[중앙시조백일장1월] 장원 정행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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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늦게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죠. 하루에 시조 한두 편 읽지 않고선 잠자리에 들지 못합니다. 영 허전해서요."

2006년 첫 시조백일장 장원 정행년(56.사진) 씨의 시조 사랑은 남달랐다. 아침 출근 전에 시조 읽고 오후 시간 날 때 또 읽고, 늦은 저녁엔 습작을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쉰 살을 넘어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시조를 접한 건 겨우 3년 전이다.

"3년 전 서점에서 문예지 한 권을 샀는데 거기에 실린 세 수 짜리 현대 시조 한 편이 유독 눈에 밟혔습니다. 그 뒤로 시조집을 사고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지요."

처음엔 주위에서 뜨악한 얼굴로 쳐다봤다. "시를 쓰려면 자유시를 하지 왜 시조냐"고 물어왔단다. 현재 서울 마포에서 세무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어, 시조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위에선 생각한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정완영.김상옥 선생 등 원로 시조시인의 작품을 읽어주며 시조 자랑을 늘어놨다. 고등학교 때까지 문예반에서 활동했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일일이 베낀 노트는 벌써 두 권째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따로 메모해놓고 인터넷에서 시조 관련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관련 정보도 열심히 모으고 틈틈이 습작을 했다.

정성은 역시 통하는 법. 그는 지난해 2월 중앙 시조백일장 차하에 당선됐다가 연말 장원에서 아깝게 떨어졌고, 올해 다시 도전해 1월 장원에 올랐다. 장원 당선작 '월포리에서'도 2년 전 경북 포항 해안가를 들렀다 받았던 느낌을 다듬고 다듬어 내놓은 것이다. 시조의 매력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이어졌다. 영락없는 시조 매니어의 말이었다.

"시조엔 가락이 있습니다. 한데 이 가락이 자유시처럼 한껏 풀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율격이란 게 있어 맺었다 풀었다 하면서 은근히 살아나는 겁니다. 판소리처럼 친숙하고 다정한, 어떤 맛이 있지요."

손민호 기자

*** 심사위원의 한마디

종장에선 과감히 의미 파고들어야

시조 형식은 초장.중장.종장의 삼장(三章)으로 이루어진다. 시로 치자면 삼행이라고 할 수 있으나 행(行)과 장(章)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초장이 시상의 서두를 풀어내는 기능을 한다면, 중장은 이를 이어받아 시상을 전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종장은 그 의미를 심화시키면서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종장을 '열매의 핵'이라고들 한다.

연시조의 경우는 어떠한가. 연시조는 세 수일 경우 서론-본론-결론, 네 수일 경우 기-승-전-결 등 대개 시의 3단과 4단 구성법을 따른다. 이럴 경우 각 수에서 장(章)의 역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경우도 앞서 말한 각 장(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연시조 한 편은 각 수가 시의 구성법을 따르면서도 유기적으로 잘 연결돼야 한다. 동시에 각 수에서도 삼장의 기능이 잘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작품 한 편을 창작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장원으로 뽑은 작품은 그 구성이 정연하다. 월포리의 첫 인상-내면의 진술-평안함의 회복 등 각 수의 시상 전개가 잘 정돈돼 있으며, 각 수에서의 장(章) 또한 무난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차상의 작품은 원래 네 수였으나 중간을 축약하여 세 수로 수정하였다. 오랜 숙련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지만 엄동을 견디는 보리 싹의 이미지를 오히려 반감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차하로 선정한 작품 역시 무난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앞서 말한 내용을 토대로 살펴보면 반드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어느 부분인가 생각해보자.

아깝게 밀린 작품들이 많았다. '터널, 그 새벽'(송순만)은 '퇴색된 뼈'와 같은 무리한 표현과 불필요한 수식이, '차창에'(이갑노)는 상당한 구사력과 호흡량에도 주제가 불분명해지는 단점을 안고 있다. 박해자 씨의 경우는 구성의 무난함에도 각 장이 한걸음 정도 벗어나는 단점이 결정적이다. 한덕.이규빈.김지송 씨는 시적 대상의 외면에서만 머물지 말고 과감히 내면을 뚫고 들어가는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차하 작품에서 수정할 부분은 둘째 수 종장이다. 구성이 현재-과거-현재이므로 과거의 이야기로 모아주는 것이('진한 맥을 이어간다'로 현재까지 늘이지 말고) 바람직하며, 어미도 각 장이 모두 종결어미 '~다'를 쓰고 있는데 그 변화를 둘째 수에서 시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유재영.이지엽>

*** 바로잡습니다

1월 31일자 24면 중앙 시조백일장 장원 정행년씨의 나이는 66세가 아니라 56세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이에 따라 "환갑 넘어~"로 이어지는 기사도 "쉰 살을 넘어~"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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