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습니다" 열혈 해설위원 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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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있습니다."

WBC 독점 중계하는 JTBC 해설위원 자격으로 #대표팀 일본 전지훈련 지켜보며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조언 #19일 요미우리전서 김인식 감독에게 날카로운 질문도

19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과 일본 프로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평가전이 열린 일본 오키나와 나하의 셀룰러 스타디움.

경기가 0-4, 대표팀의 패배로 끝난 뒤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던 김인식(70) 대표팀 감독을 향해 '발언권'을 달라며 손을 번쩍 든 한 사람이 있었다.

"2009년 WBC 대회 초반 일본에 대패한 이후 대표팀이 결승전까지 올랐던 것처럼 평가전이지만 오늘 대표팀의 첫 경기 패배가 앞으로 대회를 준비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까요?"

당시 대표팀은 1라운드 1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9-0으로 첫 승을 거뒀지만 일본과의 2차전에서 2-14(7회 콜드게임)로 대패했다. 하지만 뼈아픈 라이벌전 패배 이후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라 결국 준우승을 차지했다.

WBC 대표팀을 찾은 박찬호 JTBC 야구 해설위원

WBC 대표팀을 찾은 박찬호 JTBC 야구 해설위원

김 감독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건 다름아닌 '한국 야구의 레전드' 박찬호(44) JTBC 야구 해설위원이었다. 박찬호 위원은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시즌 동안 활약하며 124승을 거둔 '국민 영웅'이다. 2006년 1회 WBC에는 국가대표로 참가해 팀의 4강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박 위원은 지난 17일 WBC 전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JTBC의 해설위원 자격으로 대표팀 전지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를 찾았다. 대표팀 훈련이 진행된 구시카와 야구장을 방문한 그는 김인식 감독을 와락 끌어 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후배들도 박 위원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인사했다. 2012년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태균(한화)은 박찬호를 향해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고, 박찬호는 김태균의 뺨을 어루만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제 별명이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수다스러운 사람)'잖아요. 후배들에게 제가 잔소리하면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해서 후배들을 보러 왔어요"라며 웃은 그는 훈련장 곳곳을 돌며 후배들을 만났다. 대표팀의 오른손 선발 투수 요원인 이대은(경찰야구단)과는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 위원은 이틀간(17~18일) 대표팀 훈련을 빠짐없이 지켜봤다. 이날 요미우리와 평가전에서도 투수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홈플레이트 뒷편에 자리를 잡았다. 끝까지 경기를 진지하게 지켜보며 대표팀 투수들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했다.

그는 "오늘은 투수 위주로 체크했다. 대표팀의 새얼굴들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투수로 나와 1과3분의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심창민(삼성)의 투구가 인상적이었다. 2009년 WBC에서 정현욱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 위원이 언급한 정현욱은 2009년 대회 당시 팀의 위기 순간마다 등판(5경기 출전)해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국민노예'라는 애칭과 함께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박 위원은 또 "선발로 나선 장원준(두산)은 첫 경기였지만 제구력과 볼배합이 좋았다. WBC에 출전하는 투수의 경우 지금 제구력이 잡혀야 하는데 장원준은 뛰어난 제구를 선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장원준은 요미우리 주전 타자들을 상대로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안타는 한개도 맞지 않고, 삼진은 3개나 뽑아냈다. 장원준은 다음달 6일 이스라엘과의 1라운드 첫 경기 선발 등판이 유력하다.

WBC 대표팀을 찾아 김인식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찬호 JTBC 야구 해설위원

WBC 대표팀을 찾아 김인식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찬호 JTBC 야구 해설위원

박찬호 위원에게는 2013년 WBC 예선탈락의 아쉬움이 깊게 남아있다. 그는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이 아팠다. 내가 뭔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차라리 내가 얻어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후배들이 용기를 내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3일 동안 후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김인식 감독에게 갑작스런 질문을 던진 이유를 묻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이어갔다. 그는 "만약 오늘 경기에서 이겼다면 선수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강팀을 첫 판에 만나 진 게 오히려 다행이다. 선수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오늘 경기가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데 있어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키나와=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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