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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희 대주교·법정스님 본지창간22주 특별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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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지금 역사상 미증유의 변혁기를 맞고 있다. 지난 6월의 대전환과 합의개헌안의 마련으로 민주화의 시동은 걸렸지만 우리의 앞길에는 밝은 희망 못지않게 도전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의 통제가 눌리면서 억눌렸던 욕구가 분출하고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 세속에서 비껴나 세상을 관조하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윤공희대주교(63)와 송광사 불일암의 법정스님(56)을 각각 찾아 빈 마음의 지혜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민주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휘몰아치고 있는데 이 변혁의 시대가 어떻게 전개되리라 보시는지요.
▲윤공희 대주교=희망적이지만 염려스런 점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에 역행하는 어떤 반동적인 세력도 앞으로는 나오지 못하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6월의 사태에서 국민적 합의를 무시한 힘의 정치는 단명하다는「현장체험」을 했읍니다.
▲법정스님=지난날의 죄과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을 부추겨 이끄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역사의 진실 앞에 알몸으로 서려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을 말리는 사람도 나와야겠읍니다. 가해자의 과거 공포증이나 피해자의 원한과 앙갚음이 이 도도한 역사의 진로를 바꾸어서는 안돼요.
―요사이 극단주의적인 대립현상이 자주 노출되고 있읍니다. 죽음 앞에서는 흔히 모든 게 용서된다는 통념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것같아 걱정입니다.
▲법정=극단주의는 그 자체가 병이예요.
보편적인 면은 접어둔채 자기주장 이외에는 눈과 귀를 가리고, 나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강요하는「억지문화」는 이제 청산돼야 합니다.
불교와 노장사상의 영향이 컸겠지만 우리 민족은 투쟁적인 양극의 대립보다 포용적인 중도의 삶을 지향해왔고, 또 그것이 모든 윤리와 도덕의 좌표가 되었지요.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평가도 전생애의 차원에서 봐야지 부분적인 단면에서만 보면 왜곡되고맙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 템포에 대해서는 혁명론과 점진적 개혁론이 엇갈리고 있는데 바람직한 변화의 템포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윤=폭력을 수반하는 혁명은 또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지요. 점진적 개혁이란 기득권자들의「기만 논리」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회개와 쇄신을 통한 혁신이 그래도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양식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요사이「선거혁명」이라는 말이 있던데 좋은 개혁방법이라고 생각되더군요. 다만 가슴이 뜨거운 젊은이들의 점진적 개혁에 대한 불만도 한편으로는 이해해줘야 합니다.
▲법정=혁명은 절대 반대요. 인간의 삶 자체가 기존의 모든 것을 일시에 단절할 수도 없는 것이거니와 혁명은 결국 혁명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쉽고 증오심과 적대감만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새 시대를 열 지도자가 갖춰야할 품성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윤=사람을 존중할줄 알고, 사회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면 됩니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사회든 모든 인간 공동체의 귀결점은「인간의 존엄」으로 귀착되는 것 아닙니까.
▲법정=대중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 사람이라야겠지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영하는 사람의 용심이 바로서지 않으면 억압의 도구가 돼버리기 십상이죠.
―오늘날 민주화의 길을 열기까지 종교인들의 공헌이 적지않다고 봅니다만 종교인들의 정치적 공개발언이나 활동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것 같은데….
▲윤=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은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치기술 문제에까기 간여해서는 안되겠죠.
그동안 마치 종교계가 야당을 지원이나 한것 같은 인상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야당의 민주화 주장과 가치관을 같이했을 뿐이지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지원한 것은 아닙니다.
▲법정=종교 지도자는 나라의 어른이라는 입장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등의 문제에 대해 할말을 해야합니다. 입을 다물거나 불의를 외면하는 자세는 어른된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요.
―우리나라는 근대화가 시작되면서부터 가치관의 갈등을 겪어 왔읍니다. 특히 6월사태 이후의 과정에서 인륜과 도덕을 중시해온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는듯한 느낌도 듭니다만….
▲법정=인간삶이란 바로 인간관계 아닙니까. 인간관계는 결국 인간답게 살게하는 인륜과 도덕의 틀을 지키는 일이예요.
웃사람을 공경하거나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동정하고 가진 것을 나누어 공동체를 이루어온 사람의 삶이 곧 인륜이며 도덕인데 이는 절대 흔들릴수로, 흔들려서도 안될 인류 생존의 철칙입니다.
총장실을 점거한 대학생들의 모습이 TV에 나오는 걸 보면서 최소한의 사제간 윤리는 지켜야 할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읍니다. 노사분규에서도 극히 일부였지만 역시 같은 아쉬움을 느꼈어요.
오늘의 불신풍조는 도덕적 권위의 부재에서 생겨난겁니다.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하루속히 상실되어가는 도덕성이 다시 회복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가 겪은 8.15해방 이후의 변혁에 대해서는 대상이나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 평가가 있읍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제자리 걸음이거나 후퇴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윤=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신앙하는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하느님 나라를 향해가는 발전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물질적 성장과는 달리 정신적 가치관이나 도덕성이 퇴보하거나 타락해가는 느낌도 금할수 없군요.
60년대이후 계속 표방해온 경제 제일주의는 학교와 가정에서조차 현세적 출세주의를 강요했고, 인륜·도덕등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우선의 가치관을 심었다고 봅니다.
어렸을때 부모가 걸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자녀들의 심성이 좌우됩니다.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소망 자체는 좋지만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정신적 가치를 절대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최근 두달동안 전국을 휩쓴 노사분규에 대해선 희망과 우려가 엇갈렸읍니다. 과연 노사의 바람직한 공존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윤=우리 천주교도 가톨릭 노동청년운동등을 해오면서 오해도 많이 받았고 핍박도 받았읍니다만 교회의 입장은「노동사회안의 복음정신」을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노동은 생산성이란 자(척)로만 재서는 안되고 인격을 실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동의 인간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사용자들은 근로자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대접하고, 노동자들은 보수만으로 모든 가치를 저울질하는 노동의 가치인식을 지양해야 합니다.
▲법정=임금투쟁은 좋지만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극단적인 행동은 노사 다같이 삼갔으면 합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 사람들이 절륜의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아서야 되겠읍니까. 흔히 쓰는 역지사지란 말이 있지요. 노사는 서로 입장을 바꾸어 자신이 기업주가 됐을 때와 자신이 고용인 일때의 생각을 한번씩은 해봤으면 합니다.
―몇달 후면 정치민주화를 향한 선거열풍이 휘몰아칠텐데 민주화라는게 정치·경제등의 제도나 구조만 바꾼다고 소망대로 완성될는지 걱정입니다.
▲윤=인간의 존엄을 실현하는데는 민주주의란 제도가 현재까지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제도임에 틀림없지만 그 운영이「정의실현」과 사회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됐을때 당했던 어려움을 늘 되새기면서 자유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겠지요.
―영·호남간의 첨예한 지역감정이 하루속히 해소돼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80년 「5.18 광주항쟁」도 매듭이 지어져야 할것 같은데….
▲윤=광주문제의 해결은 우선「용서와 화해」라는 입장을 전제하지 않고는 길이 없어요.
그 진상이 우선 규명돼 진압방법이 당시의 실정법적인 규범과 사회 상식에 따른 것이냐, 아니냐를 가름해야겠지요.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보상을 해야하고….
▲법정=지역감정의 문제는 아직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의식이 저변에 흐르고 있는듯한 착각을 갖게해요.
오늘날의 지역감정은 아무리 봐도 망국의 징표인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우선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표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지역감정을 이용하면 내란 밖에 일어날게 없어요.
―성직자는 물론이고 사회 지도층과 가진 자의 겸손및 공동체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가 아닐까요.
▲법정=인간의 삶이란 가진 것을 나누는 과정입니다. 물질이고 정신이고 다 마찬가지죠.
「나부터」「나만은」이라는 생각이 앞서면 인간사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지요. 우리 불교는 이런 아집을 털어버리기 위해「무소유」의 삶을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보람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주교들의 승용차를 중형이하로 낮추었다던데 요즘 종교인들의 생활 자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종교인은 우선 청빈의 문제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청년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한뒤 골프를 배워 한동안 치다가 80년에 끊었읍니다. 가톨릭농민회의 함평 고구마사건과 광주사태가계기가 되었지요.
하루는 비행장안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데 농협중앙회 이사라는 분이 함평사건에 도움을 청하려 내려와 골프장으로 찾아왔어요. 농민들의 이야기를 골프장에서 하게되니까 사치스럽게도 생각되고 아득히 먼 거리감을 느끼게도 되더군요.
아주 마음이 거북했는데 얼마후 5.18이 일어나 신부 몇사람이 비행장 헌병대에 연행돼가는 일이생겼어요. 정말골프채를 들고 그옆을 지날 수가 없게된 것이죠.
▲법정=우리 절 집안을 보면 요사이 출가입산하는 수행 희망자들이 학력은 전보다 훨씬 높은데「인간적 자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로 미루어 바깥 사회도 같은 현상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읍니다. 종교인이란 아무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이 되자는 것인데 정말 남부끄러운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오늘의 사회가 절박한 도덕성의 회복을 갈망하는 것 못지않게 종교인들에게는 본연의 청정성이 무엇보다 우선해 되살아나야 합니다.
-요사이 용공·좌경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읍니다만….
▲법정=몇달전 난생처음 미국을 두어달 다녀왔읍니다. 법문팔이 외유를 하다가 캐나다 토론토엘들러 어느 좌담회 자리에 나갔더니 북한을 왕래하는 한 기독교 목사가『오늘의 한국상황은 패망직전의 월남과 똑같다』고 비판합디다.
나는 강력한 반론을 제기했읍니다. 우선 극단적인 대립을 거부하는 우리 민족의 인성과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충격적인 변혁을 바라지 않는게 오늘의 국민적「마음 자리」라고 지적했지요.
일부 학생들이나 급진적인 운동권에서 주장하는 좌경이론이 그렇게 쉽게 확산되리라고 믿지도 않을뿐더러 또 지나치게 과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이미 중산층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민주화」를 넘어 극렬화한다면 오히려 국민들의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봅니다.
―통일문제 논의가 상당히 확산돼가는 추세입니다. 진보적인 기독교계와 운동권에서 특히 그런데 바람직한 통일 논의는 어떠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윤=통일문제 논의는 이제 개방돼야 합니다. 북한을 경계만 하기보다 다소 위험성이 있더라도 통일방안에 민족의 지혜를 모으고 마음의 연대를 다져나가야 합니다.
중공의 변화를 볼때 북한의 폐쇄 장벽도 허물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이북출신(평남 진남포)이라 좌경은 누구보다 경계하지만 통일 논의 같은 것은 억누르고 통제만 해서는 북한과의 대결에 있어서나, 우리의 민주체제수호에 있어서나 도움이 안된다고 봅니다.
자생적 공산주의라는 것도 결과론적으로 보면 억압과 통제의 반민주적 현실에서 잉태된 것 아닙니까.
이제 반공교육도 공산주의 이론자체를 송두리째 부정만 할것이 아니라 이론은 이론대로 가르치고 실상은 실상대로 알려주어 비교우위론적인 선택을 할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언론도 변하고 있읍니다만 그동안 언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읍니까.
▲법정=오늘의 시대변혁을 이루기 까지에는 언론의 역할을 무시해선 안되지요.
흔히 제도언론이라고 규탄도 많이 합니다만 그래도 신문·방송이 아주 없거나 공산주의에서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언론에 대해 비판하다가도 마음이 누그러져요.
그러나 오늘의 도덕적 타락과 가치관의 혼란은 매스컴 일각의 선정적이고 무분별한 보도에 책임이 있읍니다. 그 점은 반성해야지요.
최근에 신문이 증면됐다고 해서 보니까 요란한 원색 사진에 연예가 신변잡기로 메웠읍디다. 마음에 차지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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