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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미술

예술적으로 살아남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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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지은 명지대 교수

이지은
명지대 교수

누구 집에서 억대 그림이 나왔다거나 어느 기업이 비자금으로 미술작품을 사두었다는 기사를 보면 씁쓸하다. 유명 미술가의 작품이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도 빠짐없이 보도되는 걸 보면 미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온통 작품 값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작품의 가치가 돈으로 가늠되는 것이 벽에 걸리고 좌대에 놓이는 미술품의 현실이다. 그러나 작품 가격이 예술적 가치를 보장할까. 예술은 경제법칙 너머에 있다고 믿는다.

대안공간 루프 전시

상업화랑과 미술관이 미술계의 중심이라면 ‘대안공간’은 변방이다. 대안공간은 수집가와 비평의 이목이 쏠리는 주류 미술이 아닌 ‘돈 안 되는 미술’을 대변해 왔다. 이곳은 작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비싼 도록을 제작하거나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는 부담도 없다. 대신 고정관념을 깨는 실험적인 작품이 위주다. 어떤 작품을 만날까, 설렘을 갖고 서울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를 찾았다. ‘예술적 생존법 연구’(3월 31일까지)라는 전시 제목이 왠지 비장하다. 청년실업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진 요즘,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을 가르쳐 주려나 기대하며 찾은 전시는 내 예상을 깼다. 작가들은 예술가의 호구지책이 아니라 취업과 내 집 마련에 지친 사람들이 삶을 예술로 바꾸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전시는 관람자를 적극 작품에 끌어들였다. 전민혁의 ‘예술적 자기 쓰기’에 참여하는 관객은 30분간 반복해 자기 이름을 쓰며 ‘나’란 무엇일까 곱씹는다. 이보람의 ‘몸부림 워크숍’은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의 감수성을 일깨우고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는 훈련이다.

이원호 작가의 ‘부(浮) 부동산’. 노숙자들에게 구입한 종이박스로 만든 집이다. 생존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사진 이원호]

이원호 작가의 ‘부(浮) 부동산’. 노숙자들에게 구입한 종이박스로 만든 집이다. 생존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사진 이원호]

자기성찰과 치유는 개인에게서 공동체로 나아갔다. 이원호의 ‘부(浮) 부동산’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떴다방’과는 달리 아파트가 아니라 노숙인이 깔고 덮는 종이박스를 사러 다닌다. 작가는 남대문 지하보도나 영등포역 등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집’을 매입했다. 세심하게 면적을 측정하고, 집주인의 노동이 들어간 집의 가치를 쟀다. 부르는 가격과 주변 시세에 맞춰 계약서도 작성했다. 이 과정을 통해 지나는 행인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노숙인은 이름을 가진 주체로 드러난다. 작가는 사들인 종이 집을 모아 가건물을 세우고, 모두를 품을 만큼 넉넉한 지붕을 얹었다. 등기부등본이 필요 없는 이 거래에서 집의 의미는 주소나 투자가치가 아니라 추위를 피하고 몸을 누일 공간이다. 팔고 사는 행위를 촬영한 비디오와 계약서는 건조한 기록물이지만 노숙인의 손때 묻은 종이상자 집이 전달하는 거주와 생존의 의미는 무겁게 마음을 적신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저녁, 광장은 분노의 불빛으로 넘실댄다. 정작 우리 마음속 빈 방에는 작은 불 하나라도 켜져 있는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넘칠지언정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 예술의 경험이다. 마음속 어둠을 몰아내고 온기를 주는 그것. 힘든 세상이기에 가슴에 간직할 예술작품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다. 또한 예술이 사는 법이기도 하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