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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좌담 서로 귀기울이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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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김태길=일본의 경우 그들은 말로만 근로자들의 가족화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한번 고용되면 평생 동안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거든요.
예를 들어 그들의 최고·최저임금격차는 북구복지국가론자들이 내세운 적정비율인 4대1에 거의 근접해 있어요. 그런데 아까 김양이 말한 사례만 보더라도 1천대1이 아닙니까. 자동차를 여러대 굴리고 호화판 콘도미니엄을 갖고 있으면서 저임금근로자들에게 가족같이 이해하고 살자고 한들 누가 듣겠어요. 사용자들이 부의 축적보다 기업행위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기업관을 가지고 또 근로자에게도 그렇게 대우할 때 근로자들이 따라오게 됩니다.
▲김치수=결국 사용자측이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때라는 의견으로 모아지는 군요. 근로자들의 자제도 요구되지만…
▲권일주=그런 점에서 우리의 유교적·봉건걱 사고방식도 재검토돼야 한다고 봅니다. 유교적·봉건적 관습은 가정에서는 손윗사람에게, 사회에서는 상부계층에 복종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김태길=유교적인 사고방식에는 인존·인륜 등 긍정적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계층간 우열을 두고 지배하려는 봉건잔재는 청산돼야지요. 인격으로 대우하는 인간존중의 가치관이 아쉽습니다. 최근의 노사분규도 단순한 임금문제만이 원인은 아니잖습니까.
▲김치수=교육의 문제가 그래서 중요해지는 거겠죠. 좋은 사회의 여부는 그 사회의 임시제도와 감옥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입시제도는 사회로 들어가는 문이고, 감옥제도는 사회에서 쫓겨나는 문이라는 뜻에서요.
▲임문영=진부한 이야기지만 교육을 출세의 수단으로 보는, 실제로 머리가 비어도 대학만 나오면 똑똑하고 일 잘하는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보수를 많이 받는게 우리사회잖아요? 이 때문에 인격완성을 위한 본래의 목적보다 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기형적·기능적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교육을 받을 권리가 빈부에 관계없이 균등하게 보강되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인간적 교육이 아니겠어요?
▲김태길=인간교육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런데 현실은 다름니다. 돈이 없어도 명예롭게, 가치있게 사는 삶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하나의 원인이 되겠지요. 우리사회는 금력·권력·지위 등 경쟁성이 강한 가치관에 개인들이 많이 지배받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육 때문입니다. 좋은 사회란 서로 존경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가치관들이 통일이라든가 민주화같은 큰 가치관과 연결될 때 갈등은 줄어들 것입니다.
▲임문영=통일·민주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운전사가 핸들을 급하게 오른쪽으로 틀면 승객들의 머리가 왼쪽으로 쏠린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웃음)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쇄는 오히려 그쪽 사상에 대한 매력을 불러 일으킵니다.
민주화사회가 구성원들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이유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폭넓은 토론에 있을 것입니다. 노사분규에서도 볼 수 있지만 표현의 출구가 막혔을 때 나타나는 것은 폭력입니다.
▲김태길=임군의 말에 동감해요.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에는 공산당도 있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공산수의를 인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현실적인 사상은 그 존재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사상의 폭을 넓혀야지요.
▲김치수=우리나라에도 사회주의 혁신정당이 있긴 있죠.(모두 웃음) 그러나 있으면서도 실제 없는 것, 그것이 우리사회의 이념적 위선입니다. 사회주의 서적들도 너무 광범위하게 금서로 묶어 놓고 있어요. 금서를 많이 푼다고 하니 기대해보지요. 그러나 지금도 보고 싶은 사람은 읽고 있습니다.
▲김태길=학생들만 많이 읽지 교수들은 많이 안 읽찮아요? (웃음)
▲김치수=실제로 그런 책들을 풀어놓아도 큰 문제는 없을거예요. 구라파에서 「마르크스」이론이 비판 받는 것은 서구의 노동자들이 동구의 노동자들보다 잘살기 때문이잖습니까? 자본주의라고 해서 노동계층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건강한 사회란 다른 이념과 용기있게 대결해 이길 수 있는 사회일 것입니다. 아울러 건강한 사회는 보수적인 관념과 새로운 관념이 조화를 이루는 곳일겁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이자리에서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는 없었나요.
▲권일주=아무리 입장이 틀려도 일단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되어있으면 세대간의 갈등은 별 문제가 없는 것이겠죠.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젊은이들의 생각이 결코 과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됐습니다.
▲오춘희=그런 느낌의 교류가 민주화의 본질, 즉 너그러움이라고 생각돼요.
▲김명희=하지만 기성세대의 체험에서 얻은 지혜를 젊은이들이 존중해주는 풍토도 하루빨리 회복되어야겠어요.
▲김태길=한 민족,한 국가의 발전은 릴레이 경수와 같은 것입니다. 바통을 받는 것은 협동이 안되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의식의 변화에 따라 기성세대가 새로운 주장에 귀기울이고 가깝게 접근해야 역사가 발전합니다.
『젊은 놈들이 무엇을 아느냐』고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역사에 역행하는 행동입니다. 젊은세대들도 기성세대에게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곤란합니다. 1백년전 사람인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면서 불과 20∼30년 앞선세대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발상은 지극히 조급한 것입니다. 세대차는 서로 공부하고 이해하면서 좁혀야 합니다.
▲김치수=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방식대로라면 민주사회로 가는 길이 반드시 험난하고 위태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논의를 정리하면서 민주시대의 우리의 가치관이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를 요약해 보지요.
▲오춘희=민주주의는 상호존중의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가치관 뒤에 있는 것 같아요. 가정내에서 또 사회에서 지배만을 일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러한 상호존중의 생각 속에 함께 공존해 나가려는 생각을 해야하리라고 봅니다.
▲김태길=민주주의는 휴머니즘이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하겠군요.
▲임문영=지금 우리는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민주주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실현할 기회가 있는 자유로운 사회라 생각하고 그것을 저해하는 모든 요소들과 부딪쳐나가겠다는 의식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김치수=결국 민주사회란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 모두가 자유롭게 함께 사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장시간의 대화를 거듭했다는 사실은 결론적으로 민주사회는 실천적 결과이후에 온다는 명제를 증명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범위내에서 최선의 실천을 다해야겠습니다. 오랜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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