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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김준영 특파원 말레이시아 르포] 먼저 잡힌 ‘LOL 여성’ 범행 뒤 머리 짧게 잘라 변장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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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오른쪽)가 16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자히드는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살해된 북한 남성은 김정남이 맞다. 시신은 부검 절차를 마친 뒤 북한에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오른쪽)가 16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자히드는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살해된 북한 남성은 김정남이 맞다. 시신은 부검 절차를 마친 뒤 북한에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16일 말레이시아 경찰의 김정남 암살 용의자 추적전과 김정남의 시신을 둘러싼 관련국의 신경전은 섭씨 35도를 육박하는 쿠알라룸푸르의 기온만큼이나 달아올랐다.

256만원 뭉칫돈 들고 호텔 투숙
직원 “한국인이라는 생각 들었다”
인도네시아 여권 제2 용의자는
택시기사인 남자친구가 제보

경찰 수사는 두 번째 여성 용의자인 시티 아이샤(25)를 체포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여권 소지자인 아이샤의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그의 남자친구인 택시기사였다. 그는 전날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범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4명의 남성 용의자들은 이날 현재 검거되지 않았다.

전날 붙잡힌 베트남 국적 여성 도안티흐엉은 체포 전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변장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난인 줄 알고 가담했다”는 자신의 진술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교도통신과 현지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도안은 청바지 차림으로 지난 11일 쿠알라룸푸르 인근 호텔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뒤 이튿날 다시 1만 링깃(약 256만원)의 뭉칫돈을 들고 와 투숙 연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예약이 꽉 차 방을 구할 수 없자 인근의 다른 호텔로 옮겼다. 이 호텔 종업원은 사건 당일인 13일 오후 도안의 머리가 단발로 짧아졌다고 진술했다. 도안이 묵은 호텔 객실 바닥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어 청소원들이 불평을 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도안이 베트남 여권을 갖고 있었지만 키가 크고 예뻐서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호텔 여직원의 목격담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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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시신은 이틀째 쿠알라룸푸르 병원(KLH) 부검실을 떠나지 못했다. 15일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막지 못했던 강철 북한 대사 등 북한 외교관들은 더 이상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 모를 시신 이동을 포착하려는 각국 내외신 기자들만 북적거렸다. 경찰은 이날도 공식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 대신 “부검이 끝나면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인계하겠다”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발표가 전해졌다. 부검실 앞의 한 말레이시아 기자는 “인도 시점은 부검 결과가 나오고 경찰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남, 작년 10월 경호원과 함께 와”

생전 김정남이 자주 찾았다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고급 한식당 고려원의 16일 전경. [사진 김준영 기자]

생전 김정남이 자주 찾았다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고급 한식당 고려원의 16일 전경. [사진 김준영 기자]

김정남은 말레이시아를 찾을 때면 평소 경호원을 대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자주 찾았던 고급 한식당 고려원을 운영하는 교민 알렉스 황(한국명 황일록)씨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경호원과 함께 다녔으며 폐쇄회로TV(CCTV) 카메라를 무력화하는 장비도 가지고 다니는 등 암살 위험에 대비하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황씨는 또 “김정남이 시내에 머무를 때는 5성급 호텔을 이용했고 가끔 아내나 싱가포르인 여자친구를 데리고 우리 식당에 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식당 관계자는 “김정남은 도라지 냉면을 특별 주문해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2010~2013년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부킷 다만사라 지역의 이층집에서 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대사관에서 불과 1㎞ 떨어진 주택가다. 주택가 인근 카페 주인 디디 라마다니(30)는 김정남의 사진을 보더니 “지난해 10월 어느 날 아침 보디가드로 보이는 남성과 같이 와서 테타렉(밀크티)을 먹고 갔다” 고 말했다.

한편 김정남은 피살 당시 갖고 있던 위조여권상의 ‘김철(Kim Chol)’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페이스북 사진첩엔 김정남과 그의 반려견 사진이 올라 있으며, 다양한 국적의 100여 명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교류한 것으로 돼 있다. 특히 김정남은 2008년 올린 유럽 배경의 사진에 5년여가 지난 2013년 “유럽이 그립다!(I miss europe!)”란 댓글을 달았다. 사진 속 김정남은 유럽 친구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요트에서 활짝 웃고 있다.

신경진·김준영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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