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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저출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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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제.노동.시민사회.종교.여성계 등 각계각층이 망라된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가 발족됐다. 사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체감하기 어렵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데다 과도한 교육열.주택난.취업난 등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출산율 높이기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경우 적극적인 인구 유지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성공의 첫째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정부는 2010년까지 저출산 대책에 총 19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자원을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돈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문화.의식.윤리 등이 뒷받침돼 사회의 물줄기가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정부가 밝힌 저출산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백화점식이다. 웬만한 내용은 다 갖추고 있다. 보육료 지원을 늘리고 육아시설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근로환경을 조성하며 가족친화적 사회문화도 조성한다는 것이다. 마치 먹을 것은 많지만 정작 맛있게 먹을 것은 없는 종합선물세트 같다. 하나씩 뜯어보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허점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내년부터 민간 어린이집과 사립 유치원에 지원하겠다는 수천억원의 기본보조금은 보육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돈을 지원한다는 허술한 방안만으로는 시설 원장의 주머니만 채워주기 십상이다.

불임부부의 시험관 아기 시술비에 6600여억원을 투자한다는 것도 과도한 재정지출이다. 입양 등 불임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폭넓은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근로환경 조성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일이냐 아이냐로 고민하는 대신 결혼하지 않거나 아니면 출산을 조절한다. 모성보호 강화나 육아휴직제, 탄력적 근무방식 등을 도입해 직업을 갖고도 아이 키우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성에게만 이중 노동의 부담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 아버지 출산휴가제, 남성의 육아휴직 할당제 등도 도입해야 한다. 고용평등 수준이 높고 가사분담률 등 성 평등 수준이 높은 프랑스나 스웨덴의 출산정책이 성공한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만이 저출산의 책임을 질 수는 없다. 노동력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기업도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 현재 직장 내에 설치된 어린이집의 비율은 전체 어린이집의 2%도 되지 않는다. 직원 회식비나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하듯 출산.육아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고 여성이 육아로 인해 승진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 기업문화도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낙태 풍조도 문제다. 매년 30만 건에 달하는 낙태 문제만 해결해도 저출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생명의 경외심과 소중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 미혼모, 혼외 출생 아동에 대한 지원 문제도 드러내 놓고 논의해 볼 때가 됐다.

이와 함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노동력이 부족하다면 인력의 수입 역시 불가피한 것이다. 순혈주의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저출산 및 고령화 사회로 빚어질 사회적 위기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이제 막 출범한 연석회의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