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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교육 받았지만 간첩행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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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67년 '동백림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단순 친북 행위를 간첩 조직 사건으로 확대한 것이었다고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26일 발표했다. 동백림 사건엔 독일에서 활약한 음악가 고 윤이상 선생 등 국내외 예술가.학자 194명이 연루됐다.

진실위(위원장 오충일)는 중정이 당시 야권과 학생들이 주도한 '6.8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발표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진실위원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가 했다.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베를린의 한국 유학생들이 동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과 북한을 드나들며 지령을 받아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고 중정이 발표한 사건이다.

진실위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당시 독일에 유학했던 임석진 명지대 교수가 북한 피랍 위협을 느껴 알고 지내던 박정희 대통령의 처조카 홍모씨에게 북한인 접촉 사실을 고백하며 시작됐다. 67년 5월 임 교수는 홍씨 주선으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 대북 접촉 경위를 밝혔다.

진실위는 기소된 일부 해외 인사가 ▶동베를린 또는 북한 방문▶북측에서 생활비조의 금품 수수▶공작 교육 이수 등으로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간첩 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진실위 관계자는 "이들은 지하 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일부는 체포 때까지도 북에서 받은 난수표를 개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23명이 간첩죄.간첩미수죄로 기소됐지만 최종 판결에선 누구에게도 간첩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중정 내부 기록에는 "판.검사 1인당 5만원씩 총 50만원 지원" 등이 쓰인 문건이 나와 중정이 판.검사에게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67년 이 사건을 조사했던 중정.군 방첩대 수사관 중 일부는 "일부 피의자의 친북 혐의는 당시 남북 대치 상황을 감안하면 간첩 행위나 다름없다"고 진실위에 주장했다.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특정 정치세력이 정치보복적 차원에서 역사를 일방적으로 뒤집는 것은 또 다른 사실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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