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페놀 나올 수 없는 유리병에 '비스페놀 불검출'…그린워시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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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나 시민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도 제품에 '친환경', '무공해'라고 표시하는 이른바 '그린워시(green wash)'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제품의 특성과는 무관한 '녹색 분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 제품보다 생분해 1% 높다고 '친환경 세제'
환경부 '녹색분칠' 뿌리 뽑기 위해 고시 시행
위반하면 매출액 최대 2%까지 과징금 부과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들 가운데 환경부가 단속을 통해 파악한 사례들을 보면 과장 방법도 다양하다.

A사는 플라스틱 용기 제품에 ‘환경호르몬 불검출’로 표시했다. ‘비스페놀A(BPA)’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비스페놀A’ 뿐만 아니라 수십 가지 물질이 있고, 비스페놀A 외에 다른 환경호르몬이 검출될 수 있어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B사는 유리 재질로 된 물병에 ‘비스페놀A 불검출’로 표시했다. 친환경적으로 보이지만 이것도 안 된다. 원래 유리 재질인 경우는 ‘비스페놀A’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비스페놀A 발생 가능성이 높은 폴리카보네이트(PC) 재질 용기에는 ‘비스페놀A(BPA) 불검출’로 표시할 수 있다.
습기제거제를 생산하는 C사는 메탄올 함유량이 법적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메탄올 무함유 습기제거제'로 표시한 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준치를 넘지 않았다는 것일 뿐 메탄올로부터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를 한 셈이다.

D사는 포장지의 재생지 함량을 2%에서 3%로 높였는데, 50%를 높인 친환경 제품이라고 광고했고, E사는 세제 제품의 생분해도가 다른 제품보다 1%포인트 높다고 '친환경세 세제'로 광고했다.

환경부는 14일 제품의 환경성을 나타내는 표시?광고를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를 제정, 15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고시에서는 제품에 '친환경' 등의 표현을 사용할 경우 ▶표현 자체가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명확할 것 ▶표현 대상이 구체적일 것 ▶환경성이 뚜렷이 개선됐을 것 ▶환경성 개선이 자발적일 것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것 ▶제품의 재질·특성 등과 관련이 있는 내용일 것 ▶실제 증명이 가능할 것 등 기본원칙에 충실하도록 규정했다.

예를 들어 ‘무공해’, ‘무독성’과 같은 절대적인 표현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세제의 경우 ‘무공해 주방세제’라는 표시는 적절하지 않으며 ‘생분해도가 우수한 주방세제로 수질오염 저감’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

'국내 유일의 무공해 진공청소기' 같은 표현도 곤란하다. '국내 유일', '세계 최초' 등과 같은 배타적 표현의 경우 객관적 근거나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경우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한다. '미세먼지 저감기술 분야에서 000-000 특허를 취득 한 진공청소기'라고 구체적으로 표현을 해야 한다.

또  지금은 제품 앞면에 ‘썩는 비닐’로 표시해놓고, 뒷면에 알아보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25℃ 이상, 습도 50% 이상인 조건에 한함’으로 적어놓은 제품이 있지만 앞으로는 허용이 안 된다. 표현이 명확하지 않아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알아보기 쉬운 곳에 ‘25℃ 이상, 습도 50% 이상인 조건에서 썩는 비닐’로 기재해야 한다.

포장지만 재활용되는 제품인데도 단순히 ‘재활용 가능’이라고 표시·광고하면 소비자들은 내용물도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활용 가능 비닐포장 사용’으로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법적으로 지켜야하는 의무 기준인데도 마치 자발적으로 환경성을 개선한 제품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금지된다. 예를 들어 가구 제품에 대한 KC인증에서 E1 등급까지는 의무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도 ‘E1 등급 친환경 가구’로 표시한 제품도 있지만 앞으로는 금지된다.
‘E0 등급 이상의 친환경 자재를 사용한 가구’라는 식으로 법적 의무기준 이상인 경우에만 '친환경' 표현을 쓸 수 있다. E0 등급은 의무 사항이 아닌 환경부 환경마크 제품에 해당되는 등급이다. 가구 등급은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의 방출량으로 결정한다

'국제환경인증 ISO14001를 획득한 친환경 제품'이란 표현도 잘못이다. 'ISO14001 인증'은 제품 인증이 아닌 기업의 환경경영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경영시스템 인증이라서 제품의 환경성과는 무관하다.

기업이 자체 고안한 도안이나 마크를 구체적인 설명 없이 사용해서도 안 된다. 환경마크 등 국가인증 마크 등과 유사한 기업 자체 마크를 사용하면서 이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한다.

한편 이번 고시에는 법령을 위반해 부당한 표시?광고를 했을 때 부과되는 과징금 산정 세부기준도 규정했다. 특히 위반행위가 얼마나 심한 것이냐에 따라 과징금을 매출액의 0.1~2% 사이에서 부과하게 된다. 위반 기간과 위반 횟수에 따라 과징금이 가중된다.

제조업체에서는 제품 출시 전에 ‘환경성 표시·광고 사전검토제도’를 활용할 경우 환경성 표
시·광고가 적법한지를 미리 환경부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입증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건당 60만 원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수수료는 기업 규모에 따라 최대 75%까지 감면받을 수 있게 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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