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본영사관 소녀상 앞에서 한국인끼리 입씨름 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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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소녀상 주변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불법부착물. [사진 부산겨레하나]

지난 11일 소녀상 주변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불법부착물. [사진 부산겨레하나]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놓고 철거를 요구하고 일본을 옹호하는 글을 뗐다 붙였다 하는 소동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11일 오전 소녀상 옆 지하철 엘리베이터 벽면에는 ‘귀하가 쓴 ‘대한민국은 일본을 용서한다’는 글은 수거해 가니, 귀하의 글이 과연 재물이라고 여길 시 내용증명서를 보내길 바란다’는 전단(알림쪽지)이 나붙었다. 또 다른 A4 용지에는 ‘귀하가 가슴 아픔을 당한 이들을 대신해 용서할 만큼 누군가에게 헌신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느냐’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이달 초부터 부산 동구에 거주하는 최모 씨가 A4 용지 5장에 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언제까지 일본을 미워해야 하나. 이제는 일본을 용서하자’, ‘대한민국은 일본인을 사랑한다’ 등의 문구가 붙었던 자리다.

최씨는 지난 1월 중순부터 'LOVE JAPAN(일본인을 사랑하라)'이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3주간 1인 시위를 벌였던 인물이다. 최씨는 이어 이달 초부터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전단을 붙이기 시작했다. 최씨의 정확한 신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일 부산 시민 하모(41)씨는 최씨의 전단을 모두 뗐다. 지난 4일 하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부착물이 불법이고 피해가 경미한 점,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이유로 입건되지 않았다.

최씨가 또다시 ‘소녀상 철거하라’는 일본어로 된 전단을 붙이자 이마저 지난 5일 30대 여성이 떼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씨는 이에 질세라 30대 여성에게 화를 낸 뒤 또다시 전단을 붙였다.

소녀상을 설치한 부산겨레하나는 최씨가 계속해서 전단을 붙이자 지난 7일 이후 그대로 놔뒀고, 11일 한 시민이 또 최씨의 전단을 떼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산겨례하나 윤용조국장은 "소녀상 보호를 요구하는 선전물과 건립정신을 알리는 현수막을 붙일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를 동구청이 마련해야 한다. 동구청장은 소녀상을 보호하겠다고 한 말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은 "소녀상을 보호하겠다는 말은 주변을 청소하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겠다는 의미"라며 "소녀상을 설치한 시민단체의 선전물만 용인할 수 없어 소녀상 주변 선전물을 모두 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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