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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해진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

중앙일보

입력

“사건번호 2016-10XXXX 물건은 13억1300만원을 쓴 성○○씨가 최고가 매수인입니다. 땅땅땅.”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법정. 서초구 반포동의 SK아펠바움 179㎡(이하 전용면적) 아파트가 경매에 나와 감정가(15억원)의 87%선에 낙찰됐다. 한 차례 유찰된 물건으로 5명이 입찰했다.

법정 앞에서 경매 정보지를 나눠주던 김모씨는 “강남권 노른자 입지를 갖춘 아파트라 수십 대 일의 경쟁 속에 고가에 팔릴 것 같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뜨겁게 달아올랐던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 열기가 한풀 꺾였다. 11·3 부동산대책 이후 집값 상승세가 둔화하고 거래가 뜸해지자 경매를 통해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도 줄어든 것이다.

12일 경매전문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의 평균 응찰자 수는 7.2명으로, 2015년 12월(6.2명) 이후 1년여 만에 가장 적다. 지난해 7월 9.9명으로 고점을 찍은 뒤 9명대를 유지하다가 11월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런 흐름은 낙찰 사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경매 물건 중 응찰자가 가장 많이 몰린 건 강서구 염창동 동아아파트 85㎡다. 무려 53명이 응찰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현대아파트 114㎡에는 39명이 몰렸다, 하지만 올해 1월 물건 중 최다 응찰자는 21명에 그쳤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작년만 해도 월간 기준 최다 응찰자는 30~40명이 기본이었는데 1월 들어 확 줄었다”며 “응찰자가 줄어드는 건 경매시장 위축의 신호”라고 말했다.

입찰 경쟁이 덜해지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하락세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달 93.3%로 지난해 10월(98.9%)부터 석 달 연속 떨어졌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경매 참여자들도 입찰가를 보수적으로 써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찰 없이 바로 새 주인을 찾는 ‘신건 낙찰’도 감소세다. 서울 낙찰 아파트 중 신건 비율은 지난해 10월 50.5%였으나 올해 1월 22.4%로 ‘뚝’ 떨어졌다.

경매시장 전망은 어떨까. 주택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은행권의 대출 옥죄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돼 “어둡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돈 빌리기 깐깐해지고 대출금리도 오르면서 수요자들이 경매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매수세가 줄고 유찰되는 물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도 악재 요인이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상승해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경매 물건은 연체 후 시장에 나오는 데 8~9개월 정도 걸리는 만큼 연말부터 물건이 늘어날 전망이 많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아직까진 낙찰가율이 높은 수준이지만, 매수 심리가 위축되는 데 반해 경매 물건이 많아지면 입찰 경쟁률과 낙찰가율의 하락 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유자금을 보유한 수요자 입장에선 싼값에 집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경매로 나오는 매물은 늘어나는데 경쟁자는 줄기 때문이다. 다만 따져봐야 할 것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감정가격이 적당한 수준인지 확인해야 한다. 보통 감정가 책정 후 첫 경매일까지 5~6개월 정도 걸린다. 요즘 경매시장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미는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집값이 뛰던 지난해 여름 감정 평가한 물건인 셈이다.

강은현 대표는 “감정가 책정 이후 경매에 나오는 사이 주택경기가 위축되면 감정가보다 싸게 낙찰받더라도 현재 시세보다 비싸게 살 수 있다”며 “감정가와 급매물 가격을 비교한 뒤 경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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