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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아닌 ‘집’ 이야기는 언제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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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9면

컬쳐톡:문학과 부동산의 함수

아파트에서 산 적은 있지만, 태어나지는 않았다. 동네 골목에서 뛰어놀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에 기대어 이렇게 묻고 다녔다.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쭉 살았던 아이들이 어른이 된 사회는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까.” 


달라질 것이라는 전제 안에는 부정적인 시선이 담겼다. 담장으로 둘러처진  아파트, 문제가 생기면 경비실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곳. 살며 생기는 문제가 담장 밖을 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던 중 접한 독립출판물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는 아파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중 한 가지를 흔들어놨다. 누군가에게는 아파트도 소중한 고향이라는 사실이다. 고향 아파트와 고향 시골집에 대한 애틋함을 무게 달아 어느 쪽이 더하다고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책의 저자이자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파트 키즈’ 이인규 씨는 곧 재개발될 고향 아파트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1단지 벚꽃길, 놀이터의 기린 미끄럼틀-. 2013년 자비를 들여 첫 책을 냈고, 어느덧 시리즈처럼 네 권의 책이 출간됐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은 아파트 주민의 집을 가정방문한 내용을 담았다. 그 아파트는 곧 재개발을 위해 철거될 예정이다. ‘아파트 키즈’의 고향도 30여 년 만에  사라진다. 그들은 뿌리가 사라지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고 했다. 왜 우리는 고향을 부수며 사는 걸까.

격월간 문학 잡지 ‘릿터’ 4호를 읽다 실마리를 찾았다. 민음사에서 발간하는 잡지의 이번 호 주제는 ‘부동산크리피 ’다. ‘크리피(creepy)’의 사전적 정의는 ‘오싹한’ ‘기이한’ 등이다. 제목처럼 기이한 부동산의 세계가 9개의 글에서 펼쳐진다. 소설가 4명이 부동산을 주제로 쓴 짧은 소설과 인류학 연구원?교수?건축가 등 다양한 배경의 필자 5명이 여러 방면에서 한국 부동산을 진단한 글이 흥미롭다.

그 중 한 꼭지가 ‘아파트 키드’에 관한 글이다. 풀뿌리 활동가이자, 경기도 과천에 사는 청년 송준규씨가 재건축 광풍이 불고 있는 과천의 이야기를 썼다. 부제가 ‘청년들, 재건축에서 살아남으려면’이다. 과천에서 태어난 ‘아파트 키드’는 과천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올라 살기 힘들어졌다.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으니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집주인인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과천 ‘아파트 키드’의 시각은 또 달랐다.

청년들은 조만간 고층아파트로 재건축 될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페이스북에 ‘과천, 청년들의 수다’라는 페이지를 개설했다. 회원 수가 5000명에 달한다. 저자는 수다모임에서 온 청년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어머니와의 대화이자, 과천에 남기 위해 재건축을 피하고 싶은 청년과 시세차익을 올리고 싶은 부모 세대간의 이야기다.

 청년: 과천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그렇게 ‘재건축, 재건축’하시면 저는 과천에서 살 수가 없어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고쳐서 계속 살 수 있잖아요?

 어머니: 얘, 너 결혼하고 신혼집 마련해 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재건축의 딜레마다. 고향이 자꾸만 없어지는 이유다. 10층 아파트를 부수고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까닭이다. 송준규씨는 이 딜레마를 이렇게 설명한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엉켜 버린 ‘집값’이라는 고리가,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다. 자식의 집을 마련해 줘야 하는 부담 때문에 부모의 집값이 올라야 한다면, 그 다음 세대 때는 더 올라야 하는 걸까? 이러한 구조야말로 모두가 망하게 되는 결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집값’으로 얽혀 버린 고리를 끊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다.”

언제쯤 ‘집값’보다 ‘집’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최근 아파트 전세금을 빼서 10평 한옥을 지은 30대 싱글녀의 한옥집 기사를 썼다. 아파트에서 벗어난 그의 행보에는 가격이라는 숫자보다 사는 이야기가 더 담겨 있었다.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한 줄 글에 한 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얼만데?’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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