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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임금 미사일로" 1년 전 통일장관 발언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1년 전 개성공단 폐쇄의 한 단초가 됐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 임금 대량살상무기(WMD)개발자금 유입'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다. 김 교수는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위원과 참여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김 교수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개성공단2 : 홍용표의 거짓말'이란 글에서 당시 홍 장관의 발언을 반박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중앙포토]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중앙포토]

홍 장관은 지난해 2월 12일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WMD 개발비로 사용되고 있다며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혀 파장이 일었다. 같은 달 14일에는 방송에 출연해 "개성공단의 임금, 기타 비용 등 돈의 70%가 서기실 등으로 전해져서 쓰여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도 했다.

통일부는 당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성명을 통해서도 "북한에 총 6160억원의 현금이 유입됐고,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는데 그것이 결국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적이 있다.

김 교수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대량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쓰이면, 그 자체가 유엔 제재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선 이 말의 진위가 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홍 장관의) 이 발언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선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 임금의 30%는 '사회문화 시책비'로 사용된다고 한다. 공단 입주 기업들이 사회보험료를 공제하고 임금을 달러로 공단 총국에 지급하면 그 중 30%를 우선 공제하는데, 이 돈은 개성시 인민위원회로 들어간다. 우리로 따지면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하는 세금에 해당한다.

그리고 홍 장관이 나머지 70%가 흘러들어간다고 한 서기실, 즉 당 39호실의 실체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우선 "당 39호실은 조선노동당 3호 청사 9호실이라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외화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며 "39호실이 폐지됐다는 주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통일부는 북한의 외화관리 체게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2016년 2월 12일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2016년 2월 12일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럼 임금 70%는 어떻게 쓰이는 걸까? 김 교수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결의안을 채택할 당시 통일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를 제시했다. 당시 통일부는 "개성공단 임금 지급액의 70% 남짓이 순수하게 북한 근로자 몫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임금 사용처에 대한 김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기업이 개성공단 총국에 달러로 지급한 임금 중 사회문화 시책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북한의 '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를 통해 무역업체에 지급된다. 무역업체는 이 돈으로 식품과 생필품 등을 구입해 개성시와 공단 측에 공급한다. 노동자들이 받는 건 현금이 아니라 현물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인 '물표', 즉 '현물임금'이다. 노동자들은 이 물표로 개성의 전용상점에서 필요한 물품으로 교환한다.

일부 임금은 북한 원화로 계산해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동자들이 현물임금을 선호한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지난해 2월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소개된 무역업체 대표인 호주교포 송모씨는 "대부분의 생필품을 중국, 러시아 등 외국에서 수입해 개성시와 개성공단에 공급한다"며 "북한을 조금만 연구해도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평양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고 홍 장관의 발언을 반박했다.

김 교수는 "2006년부터 10년 동안 개성공단 임금 때문에 얼마나 시비가 많았나? 통일부는 임금 흐름에 대한 상당한 조사자료를 축적하고 있는데 장관은 몰랐다? 이 분야에 종사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을 모른체, 근거없는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당시 국회 상임위 회의록 일부를 제시했다.

2016년 2월 15일 국회 외통위 비공개회의 내용 일부

정세균: 아니, 근거가 있냐구요? 있어요, 없어요?... 아니 있는지 없는지를 왜 답을… 한국말 하는데…

홍용표: 확증이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고요.

정세균: 아니 그러면 증거가 없는 겁니까?

홍용표: 확증이 없기 때문에 성명에도 '보인다'라고 얘기를 했고, 그 다음에도 '확인할 수 없다'라고 기자한테 얘기를 한 것입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홍 장관의 발언으로 파문이 일자 "홍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가 유엔결의안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자료를 갖고 있었다면 당연히 유엔 제재이행보고서에 명시하고 공단 운영을 중단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개성공단을 폐쇄할 명분을 찾기 위해 거짓말을 했는데, 그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우기면 이번엔 유엔결의안을 위반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요즘 가짜 뉴스가 판친다. 이 말이 바로 전형적인 가짜 뉴스"라며 "지금까지 대통령과 총리,통일부가 국회에 나와 근거 없는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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