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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꼬막해초찜·청국장어회·랍스터게살오이선…요리 발명가인가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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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프 최정윤의 ‘두레유’

식객 최정윤씨는 “통 유리창을 통해 가회동의 호젓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두레유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식객 최정윤씨는 “통 유리창을 통해 가회동의 호젓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두레유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무슨 메뉴 개발했을까 늘 궁금한 집
애피타이저는 간장 한 종지
순간 얼렸다 다시 굽는 ‘설야멱적’도

“오늘 모임 장소는 정윤이가 골라봐. 그래도 요리사니까 다르겠지.”

지인·가족 모임 때마다 식사장소를 찾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다. 제일 난감한 건 연세 있으신 어르신과 젊은 세대가 함께 모이는 자리다. 어떡하면 세대 간의 입맛 차이를 극복하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식당을 찾을 수 있을까 매번 심하게 걱정된다. 특히 함께 식사하는 분들이 맛과 음식에 평소 관심이 많은 분들이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한 조사는 필수다.

갈비, 횟집 등등 주 종목을 명쾌하게 말해주면 참 쉬운데 “아무거나 다 잘 먹으니까 네가 알아서 맛있고, 새로운 음식 하는 곳으로 골라봐”라고만 하니 아주 난감하다.

‘음식 좀 드셔보신 분’들이 하는 말씀은 해석을 잘 해야 한다. 절대 아무거나 잘 드시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맛있다’에는 ‘한국적인 맛이 살아 있고 계절감도 느껴지면서 건강함까지 느껴지는 맛’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새로운 곳’이라 함은 너무 캐주얼해도 너무 엄숙한 곳도 안 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나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 식당이 인사동에 위치한 ‘두레’다. 10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가 동지 때쯤이었다. 나물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정식 집을 찾다가 지인 소개로 갔던 곳이다. 나물 맛은 물론 좋았고, 장아찌를 튀김으로 만든 메뉴에선 요리사로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까지 들었다. 한마디로 내공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7080세대가 기억하는 한정식 집은 비슷비슷한 음식들이라 사실 지루하다. 반면 두레는 이숙희 대표님이 계절 식재료를 이용해 남다른 창의적인 시각으로 전통음식을 새롭게 보여주기 때문에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곳이다.

나는 충실한 단골 중 한 명으로서 남들과는 다른 혜택도 누린다. 예약시 미리 말씀드리면 기본 메뉴들 외에 장아찌 튀김, 도루묵 참나물 백숙 등을 만들어주신다. 이런 한식도 있었나 싶은 두레만의 계절 음식이다. 새로운 계절이 올 때마다 두레가 떠오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토니 유 셰프(왼쪽)와 두레 이숙희 대표.

토니 유 셰프(왼쪽)와 두레 이숙희 대표.

내가 식사장소를 찾으면서 고민에 빠질 때가 또 있다. 외국 셰프들이 한국에 방문 했을 때다. 한식의 정통성이 느껴지면서도 감각적인 플레이팅을 선보이는 곳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제일 많다. 이럴 때는 한식의 정통성부터 고민해야하는 블랙홀에 빠지는데, 한국의 장을 세계 미식 업계 전문가들에게 소개하는 게 내 일이다보니 내게는 우리 음식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식물성 발효와 다양한 채식’이다. 이런 내 생각과 일치하는 곳이 바로 토니 유(유현수) 셰프의 ‘키친 플로스’였다. 토니 유는 사찰에 들어가 행자 생활까지 하면서 사찰음식 속에 담긴 한식의 ‘식물성 발효와 다양한 채식’을 연구한 셰프다. 요리사로서 채소만으로 손님들이 ‘한 접시 요리’라고 느낄 만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코스 요리 중에 채소 요리를 여러 개 끼워 넣는 것도 어렵다. 채소 요리는 ‘한 끼’로 부족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토니 유 셰프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 외국 셰프와 기자들이 방문할 때마다 자주 가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단골손님이 됐다.

식객 최정윤씨는 “통 유리창을 통해 가회동의 호젓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두레유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식객 최정윤씨는 “통 유리창을 통해 가회동의 호젓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두레유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이 소중한 두 단골집이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월에 오픈한 ‘두레유’가 그곳이다. 어떡하면 한식의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토니 유 셰프와 젊고 감각 있는 셰프와 한식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싶었던 이숙희 대표님이 사석에서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함께 식당을 꾸려보자 결정한 일이다. 토니 유 셰프의 요리 철학의 근간이 되는 사찰음식을 바탕으로 한 한식을 현대적인 조리법과 플레이팅으로 선보이되, 여기에 시간을 오래 들여 완성시키는 전통 장과 장아찌 등 두레만의 발효음식 노하우가 곁들여진다.

코스 메뉴의 첫 시작인 아뮤즈 부슈를 내놓는 방법부터 독특하다. 두레유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메뉴는 ‘간장’이다. 내 어렸을 적 기억에 할아버지의 밥상 가운데는 항상 간장 종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진지 드시기 전 늘 의식처럼 숟가락으로 간장 종지의 간장을 찍어 맛을 보시면서 “이렇게 해야 소화가 잘 된다”고 하셨다.

과학적으로 짠맛은 침샘을 자극해서 입맛을 돋운다. 토니 유 셰프는 간장을 이용해 식욕을 돋운 우리의 밥상 문화를 재현한 것이다. 술잔을 연상시키는 오목한 볼에 담겨 있어서 간장의 맛뿐만 아니라 향까지 즐길 수 있다. 레스토랑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곳이 아니라 경험의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이제 가정집에서도 보기 힘든 우리의 밥상 문화를 재현하는 셰프의 마음 씀씀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간장에 이어져 나오는 도토리무시루떡과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또한 특색 있다. 서양의 푸딩처럼 작은 그릇에 담겨 나오는 도토리무시루떡은 무거운 떡의 개념보다 쌉싸름한 도토리와 시원한 무, 그리고 쌀의 조합이 돋보이는 토니 유 특유의 따뜻한 채소음식 메뉴다. 곁들여 나오는 동치미에는 살얼음이 살짝 떠 있어서 이북 출신 할머니의 동치미가 떠오른다.

해초가 허브 역할을 해서 꼬막 향과 맛이 더욱 진하게 우러난 ‘꼬막해초찜’.

해초가 허브 역할을 해서 꼬막 향과 맛이 더욱 진하게 우러난 ‘꼬막해초찜’.

토니 유 셰프의 단골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해초요리다. 한밤중 이불 속에서도 불쑥 떠오르는 메뉴가 두레의 꼬막해초찜이다. 해초나 봄나물을 단순한 부재료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허브로 사용하기 때문에 꼬막 맛과 향이 더 살아난다. 메뉴명은 꼬막해초찜이지만 ‘꼬막 해초 백숙’을 먹는 듯 진한 맛이 일품이다. 토니 유 셰프의 해초에 대한 열정이 산나물 못지않게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두레유의 해초 요리들이 더욱 더 기대된다.

불판에 고기를 한 번 굽고, 옆 그릇으로 옮겨 액화질소로 급랭한 후 다시 불판에 굽는 게 특징인 ‘설야멱적’. 우상조 기자

불판에 고기를 한 번 굽고, 옆 그릇으로 옮겨 액화질소로 급랭한 후 다시 불판에 굽는 게 특징인 ‘설야멱적’. 우상조 기자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메뉴는 ‘설야멱적(雪夜覓炙)’이다. 눈 오는 겨울밤 야외에서 화로를 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기생과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설후야연(雪後夜宴)’에서 따온 이름이다. 양념된 고기를 화로에 굽다가 눈 속에 넣어 급랭시킨 후 다시 화로에 구우면 고기가 훨씬 부들부들해지는 특징을 토니 유 셰프 스타일로 재해석한 메뉴다. 숯불에 고기를 굽다가 눈 대신 액화질소를 이용해 고기를 얼리고, 다시 숯불에 굽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든다.

두레유를 오픈하면서 토니 유 셰프의 전통 한식의 재현은 훨씬 더 과감해졌음이 메뉴에서 느껴졌다. 두레유를 찾는 손님들도 여느 한정식 집 또는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과는 다른 분위기다. ‘오래된 새로움’이라고 해야 할까. 두레유 손님들은 각기 다른 세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무엇보다 나의 두 단골집이 하나로 합친 모습이 앞으로 어떤 메뉴를 개발해서 선보일지 너무나 기대된다.

두레유

주소: 종로구 가회동 16-12(종로구 북촌로 65)
전화번호: 02-743-2468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30분, 휴식시간 3시~5시
주차: 불가
메뉴: 점심코스(2만5000원/5만5000원), 저녁코스(5만5000원/7만7000원/11만원), 셰프테이스팅코스 26만원. 11만원짜리 별 코스엔 씨간장, 도토리시루떡·동치미, 손두부, 청국장어회·캐비어, 랍스터게살오이선, 꼬막해초찜, 토장연저육찜, 설야멱적, 인절미케이크 등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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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윤
셰프. 웨스틴조선호텔, 호주 하얏트 퍼스,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전통 장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는 샘표 우리맛연구중심 헤드셰프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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