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한국인 폭력조직에 경고 … 필리핀 경찰 한인 살해 물타기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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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두테르테

로드리고 두테르테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이 현지 한인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로널드 델라 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이 지난해 발생한 한국인 사업가 지모(사망 당시 53세)씨에 대한 납치·살해사건에 한인 폭력조직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이 사건은 당초 현지 경찰이 저지른 범죄로 확인됐으나 추가 수사결과 한인들도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다.

“불법 땐 필리핀 범죄자처럼 취급”
현지 한인, 경찰의 인권유린 우려

현지 매체 인콰이어러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조폭이 현지 매춘과 마약 유통, 납치 등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받았다”며 “특히 세부 지역에서 한국 조폭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인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을 순 없다. 불법 행위를 하는 한국인들을 다른 필리핀 범죄자들과 동일하게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경찰은 지난해 6월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강력한 마약사범 단속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7000명 이상이 정당한 사법적 절차 없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필리핀 경찰이 한인들에게도 내국인과 똑같은 인권유린을 자행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일각에선 두테르테 대통령 발언이 현지 경찰의 한인 납치·살해 사건에 대한 국제적 비난에 물타기를 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비탈리아노 아기레 필리핀 법무장관도 이번 납치 살해사건이 한인들 간의 사업 경쟁에서 비롯된 범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지 언론들은 “마약과의 전쟁을 강하게 추진해온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단속 경찰들의 범죄와 비리로 인해 역풍을 맞고 있다”며 “이 때문에 지난달에는 경찰 내 마약 단속 부서를 해체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일시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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