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아베가 이끄는 통상전쟁, 한국은 1급 차관보 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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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 파고, 방파제 급하다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뒷줄 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나바로 위원장 옆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 [AP=뉴시스]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뒷줄 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나바로 위원장 옆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 [AP=뉴시스]

무역 대국들은 통상전쟁을 앞두고 기민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보호무역주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에 맞서 일본과 중국 등은 통상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트럼프의 거침없는 통상 공세 배경에는 치밀한 준비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가무역위원회(NTC)라는 조직을 백악관 산하에 새로 만들었다.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의 ‘컨트롤타워’다. 대중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초대 위원장에 임명됐다.

백악관의 국가무역위원회 앞세워
무역대표부·상무부 3각편대 구성
일본 총리실 산하 TF 기능 강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중국을, 나바로 위원장은 독일을 상대로 ‘환율조작’을 문제 삼으며 일사불란하게 ‘통상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향후 미국의 통상 전략은 NTC가 주도하고 상무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가 행동에 나서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NTC를 신설함에 따라 미국의 통상은 3개 기구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나바로 위원장은 기존 오바마 정부와 전혀 다른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미 NTC, 통상 관련 정부 부처 총괄

실제 NTC 설립은 보호무역주의 강화의 상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NTC를 신설한 건 통상 이익을 상무부나 USTR로만 지키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9·11 테러 후 국토안보부를 만들어 안보기관을 총괄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상무부는 반(反)덤핑 조사를 담당한다. 외국 기업이 물건을 시세보다 싸게 판매(덤핑)해 피해를 보았다고 미국 기업이 제소하면 조사에 나선다. 얼마나 부당하게 싸게 팔았는지를 나타내는 덤핑 마진을 판정한 뒤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한다. 지난달 23일 상무부는 중국산 대형 타이어에 덤핑 판정을 하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중국에 대한 첫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취했다. 같은 달 27일엔 한국의 애경화학과 LG화학이 판매한 화학물질인 가소제(DOTP)에도 덤핑 판정을 하고 예비관세를 물렸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USTR은 통상 협정 체결과 재협상 등 현장 실무를 맡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에 대한 준비에 나설 태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미주실장은 “NTC가 밑그림을 그리면 상무부가 상대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USTR은 무역협정 재검토 등을 통해 실행기관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TPP 본부를 범부처 통상조직으로

미국의 움직임에 맞서 일본도 발 빠르게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및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조작국’ 지목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현재 TPP 대책본부를 통상 협상 전반을 총괄하는 범부처 조직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조직은 미국·유럽연합(EU) 등과의 통상 협상을 총괄하게 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경제산업성과 외무성뿐 아니라 총리실 산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전 부처가 협의했다”며 “이 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무부가 통상 업무를 전담하는 중국은 아직 조직 개편 움직임은 없다. 중국은 조직 개편 대신 미국에 맞서 자유무역 확대를 내세우며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심산이다. 당장 5월에 현대판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주제로 베이징에서 국제회의를 연다. 스위스·필리핀 등 40여 개국 정상을 초청할 계획이다.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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