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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매티스 방한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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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인터넷 시대의 축복 중 하나는 정보 독점의 붕괴다. 정보를 독차지해 온 소수엔 악몽이겠지만 누구든 ‘인터넷의 바다’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을 수 있다.

새 대북정책 짜기 위한 한·일 순방
정밀타격 교감 있었으면 밝혀야

지난 2일 찾아온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도 그런 케이스다. 정부 보도자료를 보면 그가 한·미 동맹의 굳건함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를 재확인하러 온 듯한 인상을 준다. 대부분 언론이 ‘북 공격 시 압도적 대응, 사드 배치 재확인’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다룬 것도 그래서일 거다.

한데 이게 방한의 본질인가. 옛날엔 찜찜해도 넘어가야 했지만 이젠 다르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만 가도 진실이 보인다. 매티스가 한국행 비행기 속에서 기자단과 나눈 대화록이 진실의 실마리다. 그는 한·일 순방을 두고 “북한 상황에 대한 양국 지도자들의 인식을 알기 위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웃들 생각을 알아야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나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양국 의견을 듣자는 게 순방의 참 목적인 것이다.

여태껏 “이게 트럼프의 대북정책”이라고 내놓을 만한 건 없었다. 올 초 “대륙간탄도로켓의 시험발사가 마감 단계에 이르렀다”는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오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맞받아친 게 전부다. 그러니 그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짜일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분명한 건 김정은 신년사 이후 곳곳에서 ‘선제적 타격’은 물론 ‘예방적 타격’ 주장마저 튀어나온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31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북한청문회에서 밥 코커 위원장은 “이제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제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국내에선 흔히 헷갈리지만 두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 선제적 타격은 적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상대 무기를 미리 파괴해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다. 반면 예방적 타격은 전쟁 징조가 없어도 적국이 핵폭탄 등을 만들지 못하게 관련 시설을 미리 분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제적 공격은 국제사회에서 용인되는 반면 예방적 공격은 침략행위로 비난받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정밀타격’이란 이름으로 북한 핵시설에 대한 예방적 타격을 역설해 왔다. 이는 그의 저서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에 11쪽에 걸쳐 상세히 나와 있다.

“나는 북한 원자로를 폭격할 준비가 돼 있는가? 진짜 그렇다. 이스라엘은 이라크 원자로를 공격해 국제적 비난을 샀지만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한 것이다. 북한이 시카고·LA·뉴욕에 핵미사일을 쏠 능력이 생기는 한 이 미치광이들과의 협상은 무의미해진다. 협상이 실패하면 나는 진짜 위협이 되기 전에 이 무법자들에 대한 정밀타격을 주장할 것이다.”

과격한 공약을 내걸었던 트럼프가 취임 후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달라질 거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경장벽 추진, 반이민 행정명령 등 취임 직후 보여준 그의 행동은 과격함 자체다. 그러니 대북 정밀타격을 감행하지 말란 법도 없다.

미국이 우려하는 건 북한이 10개 이상의 핵무기에다 ICBM까지 손에 쥐는 상황이다. 이는 핵무기 1~2개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10개 이상이면 선제타격을 해도 한꺼번에 없애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이 반격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선제타격을 해도 별 의미가 없어 이 단계에 이르기 전에 미국은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려 할지 모른다.

한·미 동맹, 사드 배치 재확인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짜일지는 이보다 훨씬 중요하다. 당국은 매티스 방문 시 정밀타격 카드를 포함, 트럼프 대북정책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면 이를 밝히는 게 옳다. 그래야 대선주자 등 미래의 정책 결정자들은 물론 일반인도 우리의 안보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절감할 것 아닌가.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