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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에서 바라본 북한의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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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탈북 외교관 태영호씨는 북한 정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 매체와 수차례 인터뷰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국 주재 대사관 공사였던 그는 인터뷰에서 외부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북한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 체제 비판이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폭로했다. 탈북을 감행하기로 한 그의 결심은 ‘북한 정권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북한 엘리트의 뿌리 깊은 믿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 36명 설문조사 실시
97% ‘정부 비판하는 사람 안다’
경제 활동 방해할 때 가장 분노
외부 정보로 북한 주민 도와야

북한 정권에 대한 태영호 전 주영 공사의 비판보다 더 흥미로운 게 있다. 사실 아무런 분노나 비판이나 슬픔 없이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놀라운 일일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의 증언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탈북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도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해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는 점이다.

이제 3만 명에 달하는 탈북자 인구는 연구자들에게 탈북자들의 북한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북한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자기선택표본(self-selected sample)’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평균적인 북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북한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북한 내부의 견해(A View Inside North Korea)’라는 이름의 CSIS 프로젝트는 북한의 보통 주민 36명에게 그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예컨대 응답자의 100%가 일상 생활에서 정부의 배급제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그들은 대신 생필품을 시장에서 얻고 있다. 북한의 배급제 붕괴를 탈북자가 아니라 북한 주민을 통해 밝힌 것은 본 연구가 최초다. 또 97%의 북한인은 정부에 대해 내심 비판적인 사람을 알고 있다. 이는 국가가 더 이상 인민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주민의 생각을 통제하려고 북한 정권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나 나올 법한 전체주의적인 노력을 쏟아 온 것을 감안하면 97%는 놀라운 수치다.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북한에서 범죄로 취급된다.

정부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 무엇인지를 묻자 북한 주민들은 개인의 사업 활동 방해, 강압적인 노력 동원, 세외(稅外)부담, 노임 미달, 화폐개혁의 경우처럼 사회로부터 민간 저축을 빼앗아 가려는 시도 등의 국가 활동에 분노한다고 한결같이 답했다. 북한 사회와 정부 사이의 간극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북·중 국경지역에 사는 북한 사람들이 외국 정보에 정기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CSIS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보 노출은 보다 광범위하다. 91.6%의 북한 응답자들은 적어도 매월 한 번꼴로 외국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흔한 정보원(情報源)은 미국의소리(VOA)·자유아시아방송(RFA)·영국방송협회(BBC)의 라디오 방송 청취와 외부 정보가 담긴 USB 플래시드라이브다. 또한 응답자의 83%는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나 정부 정책보다 외부 정보와 상품이 그들의 일상 생활에 활용 가치가 더 높다고 인정했다.

CSIS 설문 조사에 응한 북한 주민의 표본은 북한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표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남녀 성비와 연령층이 고르게 분포됐다. 연령층의 경우 나이가 가장 적은 응답자가 28세, 최고령 응답자가 80세였다. 상대적으로 보다 부유한 평양 거주자만 설문 대상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들은 세계의 나머지와 비교했을 때 자신들이 상대적 결핍(relative deprivation) 상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이 ‘사회주의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응답자들의 교육 수준이나 노동당 당원 가입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은 의사·사업가 같은 화이트칼라 직종에서부터 노동자·요리사·이발사 같은 블루칼라 직종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외부와 왕래가 잦은 북·중 국경 지대에 사는 북한 사람들은 외국인이나 외국 상품에 보다 빈번하게 노출돼 있다. 표본의 편향성을 막기 위해 CSIS 연구 프로젝트는 강원도, 황해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양강도, 청진, 평양, 함경남도, 함경북도,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 등이 포함된 다양한 지역과 도시의 거주자들을 설문 대상으로 삼았다.

큰 표본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웠다. 국가가 가하는 제약 때문에 북한에서 갤럽 스타일의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할 수는 없었다. 북한에서는 전화번호부마저도 국가기밀이다. 하지만 CSIS가 운영하는 ‘38선을 넘어(BeyondParallel.CSIS.org)’ 웹사이트에 게시한 연구 결과는 세계에서 가장 불투명한 정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문을 제시하고 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외부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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