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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공고에 ‘단정한 머리’ 규정 … “대머리 채용 거부는 외모 차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자연 탈모로 대머리가 된 권모(38)씨는 지난해 5월 인터넷에 올라온 서울 A호텔의 단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보고 문자로 지원서를 보냈다. 아르바이트의 주 업무는 호텔에서 열리는 연회 행사의 손님 응대 및 안내, 하객들 음식 제공, 테이블 접시 치우기 등이었다. 채용 공고에는 검정 구두·검정 양말·벨트, 그리고 ‘단정한 머리’를 준비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대머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권씨는 2년 전부터 진행된 탈모로 고민하다 아예 머리를 다 밀어버린 상태였다. 권씨의 문자를 본 구인공고 담당자는 권씨에게 공고 날짜에 맞춰 출근하라는 통보와 주의사항, 복장 규정 등을 다시 알려줬다.

호텔 접객 알바 합격 뒤 거부 당해
호텔 측 “고객에 불편함 줘 부적절”
인권위 “재발 방지 대책 세워라”

일사천리로 채용이 됐지만 권씨는 출근 첫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권씨의 머리를 본 채용 담당자는 “단정한 머리라고 채용 공고에 있기는 한데…”라며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담당자의 시선은 계속 권씨의 머리를 향해 있었다. 그러더니 “관계 직원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잠시 뒤 돌아온 담당자는 권씨에게 “같이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통보했다.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해고를 당한 권씨는 호텔 측의 처분이 외모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권씨의 진정 사례를 소개하며 “인력 채용 시 업무상 필요성과 무관하게 외모를 이유로 일에서 배제하는 일이 없도록 A호텔 대표에게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 “용모에 대한 기준은 개인의 주관적인 성향은 물론이고 각각의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는 것임에도 탈모 상태인 것만을 고려해 채용을 거부하는 건 신체 조건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공개한 결정문에 따르면 A호텔은 해당 연회행사의 인력채용은 협력업체에 의뢰해 진행한 것이라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대머리는 접객을 주요 업무 내용으로 하는 호텔 종사자로서 고객에게 불편함과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부적절한 외모라 채용이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2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4.2%가 ‘채용 시 지원자의 겉모습이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한 결혼정보회사 설문조사에서는 여성들의 기피 배우자 1위로 탈모 남성이 꼽혔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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