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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치주의 지켜낸 법원의 이재용 영장 기각 존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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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법리와 증거의 무게를 새삼 일깨워준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어제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도 미흡하다”고 기각 사유를 적시했다. 영장 기각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이 들어 일부에서 반발이 있지만, 무리한 뇌물죄 적용을 재검토하고 부실한 증거를 보완하라는 법원의 판단은 적절하며 존중돼야 할 것이다.

 특검은 “구속영장 기각은 유감”이라며 “피의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 있어서 견해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돌아보면 특검이 법리보다 정서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은 영장 청구를 하면서 “영장 내용을 보면 기절할 수준” “혐의 입증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등 법원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경제보다 정의”라며 비법적(非法的) 표현까지 동원했다. 뇌물이란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이 부회장을 단죄하는 게 마치 정의인 양 하는 여론몰이식 수사는 온당치 않다. 오로지 법과 실체적 진실에 따라야 한다.

 특검이 ‘흔들림 없는’ 수사를 다짐한 것은 다행이다. 이번 영장 기각을 전반적인 수사 방향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기업 특검’으로 변질된 수사의 초점을 원래 본류(本流)였던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쪽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또 구속이 곧 처벌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사실 구속이냐 불구속이냐는 수사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법리적 다툼이 있는 사건에서는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방어권을 보장해주면서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다.

 삼성도 ‘영장 기각=면죄부’로 오해해선 안 된다. CEO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앞으로 사법부의 최종 판단까지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초래된 경영 혼란부터 시급히 정리하고 이미 큰 상처가 난 브랜드 이미지도 하루빨리 수습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다짐한 경영투명성 제고와 미래전략실 폐지 등의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