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현직경찰 일당에 한인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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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당국자는 17일 “지난해 10월18일 필리핀 앙헬레스의 자택 인근에서 납치된 한국인 사업가 지모(53)씨가 살해됐다는 사실을 필리핀 경찰청으로부터 16일 통보받았다”고 발표했다.

현지 경찰 조사 결과 범행에 연루된 용의자는 8명이며, 이 중엔 현직 경찰관 3명과 전직 경찰관 1명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을 주도한 경사급의 현직 경찰관 A씨 등 일당은 사건 당일 “마약 관련 혐의가 있으니 조사해야 한다”며 지씨를 집 밖으로 유인했다. 이어 A씨는 가짜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한 뒤 지씨를 미리 준비한 차량에 태우고 현장을 떠났다. 현지에서 인력송출 업체를 운영하던 지씨는 A씨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영장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순순히 연행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현지 경찰은 범인들이 사건 당일 차량 안에서 지씨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A씨는 자백을 하지 않았지만 함께 차량 안에 있었던 다른 범인의 진술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지씨가 숨지자 전직 경찰관 B씨가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시신을 소각했다.

이어 범인들은 지씨가 이미 숨진 뒤인 10월30일 지씨의 가족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거액을 요구했다. 지씨의 가족들은 현지 경찰에 알리지 않고 범인들에게 500만 페소(약 1억 2000만원)를 건넸지만 일당은 돈을 받은 뒤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최근 필리핀 경찰이 경장급 용의자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으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고 한다. 주범 A씨는 현재 제한적 구금 상태다. 이와 관련 페르펙토 야사이 필리핀 외교부 장관은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내용에 유감을 표시한 뒤 “현재 필리핀 정부가 사안의 엄중성을 감안해 특별검사를 임명,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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