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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기 과한가요? 이번엔 군더더기 뺀 알짜만 보여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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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인성은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태수를 두고 “솔직한 인물”이라 말한다.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점이 나와 비슷하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조인성은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태수를 두고 “솔직한 인물”이라 말한다.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점이 나와 비슷하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무려 9년이다. 조인성(35)이 고려 시대 동성애자 무사로 변신했던 영화 ‘쌍화점’(2008, 유하 감독) 이후 ‘더 킹’(18일 개봉, 한재림 감독)으로 스크린에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2011년 군 제대 후 곧바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으나 제작이 무산되면서 긴 공백을 맛봐야 했다. 이후 그는 노희경 작가의 TV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SBS) ‘괜찮아, 사랑이야’(2014, SBS) ‘디어 마이 프렌즈’(2016, tvN)에 잇따라 출연했다. 조인성은 영화 복귀작인 ‘더 킹’을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틀어 지금 내가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라 설명했다.

‘더 킹’으로 영화 복귀, 조인성
욕망으로 파국 치닫는 정치 검사역
감각적 영상, 극 속도감이 매력
지금 내가 선보일 수 있는 최고 선택

‘더 킹’은, 목포의 주먹깨나 쓰는 고등학생에서 서울대 법대 입학, 사법시험 패스를 거쳐 정치 검사로 승승장구해 권력의 단맛과 쓴맛을 보는 주인공 박태수(조인성)의 20년 넘는 일대기다. 그 사이 전두환 정권에서부터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까지 최근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끼어든다. 쾌속정처럼 질주하는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말이 던지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메시지와 맞닥뜨리게 된다.

태수를 영입한 한강식(정우성) 검사 패거리가 조직 폭력배와 결탁해 한국 사회를 주무르는 이야기다. 여느 범죄영화와 달리 시종일관 빠르고 경쾌하다.
“그 점이 새롭다고 느꼈다. 태수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욕망이 끝까지 시원하게 내달리는 이야기를 감각적인 영상과 스타일, 극의 속도로 체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현 시국에서 볼 때 정치 검사의 이야기가 더 이상 ‘영화적’인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지난해 초부터 여름까지 이 영화를 촬영할 때만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풍자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 현실이 돼 버렸다. 결국 이 영화는 ‘당신이라면 태수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래를 위해 지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지금의 국정 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그 물음이 한층 더 무겁게 다가왔다.”
태수는 점점 더 큰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정치 검사가 된다.
“극 전체가 그 욕망에 따른 선택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 처음을 돌이키면, ‘세상의 왕이 되겠다’는 거창한 욕심보다,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평범한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라 느꼈다. 내 가족을 위하고, 지금의 처지보다 좋은 상황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 모두가 지닌 것 아닌가. 그 점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더 킹’의 정치 검사 3인방. 우두머리 한강식(정우성)과 양동철(배성우)·박태수(오른쪽부터). [사진 NEW]

‘더 킹’의 정치 검사 3인방. 우두머리 한강식(정우성)과 양동철(배성우)·박태수(오른쪽부터). [사진 NEW]

지금껏 배우 조인성을 대표하는 얼굴은 누아르영화 ‘비열한 거리’(2006, 유하 감독)의 삼류 건달 병두라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는 새파랗게 젊은 남자, 그의 눈에 어른거리는 뜨거운 비애. 그것이 아주 젊은 남자가 성홍열을 앓는 듯한 모습이었다면, ‘더 킹’은 조인성의 필모그래피에 건장한 청년으로서 새로운 이미지를 심는 대표작이 될 것 같다. 특히 한강식에게 어떤 결심을 꺼내 보이는 장면, 태수의 단호하지만 차분한 눈빛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전보다 훨씬 힘을 뺀 연기를 선보이는데.
“내 연기가 과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번에는 연기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버리고 덜어내려 노력했다. 군더더기를 빼고 빼서 알짜만 관객 앞에 툭 던져 놓는 연기. 그런 내 연기로 상대 배우, 나아가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그들이 극에 더욱 몰입하게 하고 싶었다.”
지금의 당신을 만든 첫 욕망은 무엇인가.
“연기를 시작한 건, 솔직히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시선이 좋았고, 인기를 얻고 싶었다. 연기를 하면서 보니, 이 바닥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가 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느낀 게 TV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2004, SBS)의 방황하는 ‘금수저’ 정재민을 연기하면서부터다.”
연기가 뭔지 이제 좀 알 것 같나.
“산 넘어 산이다. 문턱 하나를 넘었나 싶으면, 귀신같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새로 등장한다. 그들을 보며 나 스스로를 다잡을 때가 많다. 특히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에 출연한 것이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그건 대중이 평가하는 거다. ‘내가 그 꿈을 위해 이렇게 살았는데 사람들이 왜 몰라주지’ 생각하면 밤에 잠 못 잔다(웃음). 나로서는 그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산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흔들리는 나를 붙잡으며 가는 수밖에. 내 삶에서 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지만, 그렇다고 그걸 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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