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뇌물 공여와 위증, 횡령 혐의까지 적용했다. 특검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최근 사흘간의 고민은 영장 청구를 위한 명분 쌓기였던 셈이다. ‘최순실 특검’이 ‘삼성 특검’으로 변질되고,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은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채 ‘종범(從犯)’ 격인 이 부회장부터 처벌하는 데 따른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한 배경에는 박 대통령도 뇌물 혐의로 사법처리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박 대통령을 겨냥해 뇌물죄 프레임을 미리 정해놓은 뒤 여기에 꿰맞추기 위해 이 부회장의 영장을 청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또 그동안 특검 주변에선 “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무죄로 오인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특검이 우리 사회의 반(反)대기업 정서와 ‘불구속=무죄’로 인식되는 현실을 핑계 삼아 영장 청구를 강행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영장 청구는 특검의 승부수나 다름없다. 특검은 검찰 수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만 적용했던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금에까지 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그렇다면 두 재단에 돈을 낸 53개 기업에도 뇌물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특검은 또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고 2015년 7월 합병 성사 직후 일련의 금품 지원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대가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과 삼성은 “합병이 먼저 이뤄졌고 그 후 강요에 의해 금품을 전달했을 뿐 대가성은 없었다”는 진술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오는 18일의 영장실질심사가 최대 분수령으로 보인다. 과연 특검이 이 부회장의 뇌물 증거를 얼마나 제시할지가 관건이다. 또 특검이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을 이 부회장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는가도 관심이다. 영장전담판사가 과연 이 부회장의 증거인멸이나 도주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다만 우리는 형사사건의 경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바로 증거재판주의다. 앞으로 법원이 정치권과 광장을 휩쓰는 반대기업 정서에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