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하긴 해야 하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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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등 기업들이 주5일 근무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가 현 수준의 근로 조건을 유지하는 주5일제 시행을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재계와 노동부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우리나라의 여건상 휴일을 늘리면서 임금은 올려주는 방식으로 주5일제를 시행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계가 내놓은 단일안은 편법적인 임금 인상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며,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 비춰 휴가 일수가 너무 많아져 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재계는 주5일 근무제가 대세인 점을 인정, 도입에 찬성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동시에 한국의 능력에 맞게 휴가일수나 임금보전 방안을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자기 몫 찾기에 집착하고 있어 주5일제 입법을 위한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선진국보다 많이 쉰다=노동계의 단일안대로 휴가.휴일수를 환산하면 근로자는 기본적으로 1백39~1백48일을 쉬게 된다. 여기엔 법정 공휴일(17일)과 토.일요일(1백4일), 연월차 휴가만 포함돼 있다. 단체협약상 근로자가 쉴 수 있는 여름휴가 등 약정휴일은 제외돼 있다.

따라서 실제 휴일 수는 각 사업장의 단체협약 내용에 따라 1백70일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여성 근로자의 경우 생리휴가까지 더하면 휴일 수가 더 늘어난다.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세배 이상 되는 일본(1백39일)이나 영국(1백36일) 등 선진국 근로자보다 더 많이 쉬는 셈이다. 경총 관계자는 "이렇게 쉬면서 어떻게 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노동부는 이런 점을 감안, 주5일 근무제가 되면 공휴일을 이틀 줄이고, 단체협약상 약정휴일도 법에 맞춰 조정하자는 안을 내놓았으나 양대 노총은 이를 거부했다.

◆돈은 현 수준으로=선진국에 월차 휴가가 있는 곳은 없다. 따라서 수당으로 이를 보전해주는 곳도 없다. 연차휴가도 수당 개념이 아니라 재충전 개념이다. 생리휴가를 돈으로 보상해주는 곳도 없다.

하지만 노동계는 연월차 휴가 수당의 폐지를 반대했다. 생리휴가는 유급으로, 연장근로 할증률도 현행대로 50%(정부안 25%)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노동계도 인정하고 있다.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현 노동자에게만 적용하자는 것이지 새로 노동시장에 편입되는 노동자에게까지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지만 현 근로자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시행은 빨리?=노동계는 2005년까지 모든 사업장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국장은 "주5일 근무제 시행 시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너무 큰 차이를 보이면 중소. 영세기업 근로자의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이 깊어진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은 그런 대로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이 문제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재학 산업환경부장은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주5일제가 조기에 시행되면 그 충격파를 견뎌낼 중소기업이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관련 법 개정 이후 업종.규모별로 10여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던 일본을 예로 들며 시행시기의 촉박함을 문제삼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재원 수석연구원은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인건비 상승, 생산성 하락으로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킬수 있다"며 "시행 시기를 순차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정선구.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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