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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톰 포드가 디자인한 매혹적인 스릴러 ‘녹터널 애니멀스’

중앙일보

입력

사랑과 증오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로맨틱 스릴러 ‘녹터널 애니멀스’(원제 Nocturnal Animals, 1월 11일 개봉, 톰 포드 감독). 이 영화를 짧게 표현하자면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한 남자의 서글픈 복수극’이다. 톰 포드 감독은 치밀하고 긴장감을 갖춘 소설을 매개로, 이 시대의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알아 두면 좋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키워드별로 정리했다.

1 녹터널 애니멀스

부유하지만 무언가 결핍된 삶을 사는 수잔(에이미 애덤스)은 어느 날 소포를 받는다. 그 안엔 수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전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쓴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 초고가 들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녹터널 애니멀스’는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지어 준 별명으로, ‘야행성 동물’을 뜻한다. 이 제목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수잔, 소설 속 토니 가족이 한밤중에 당하는 사건 등과 관련 있다.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는 현실과 소설 속 이야기가 ‘액자식 구조’로 펼쳐진다.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바치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 속 소설은 토니(제이크 질렌할)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텍사스의 밤거리를 운전하던 토니와 그의 가족은 폭주족에게 공격당한다. 폭주족 우두머리 레이(애런 존슨)는 토니의 가족을 납치하고, 토니는 홀로 좌초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날이 밝자 토니는 경찰서에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보안관 바비(마이클 섀넌)는 괴로움에 휩싸인 토니와 함께 용의자를 쫓는 데 전념한다.

다섯 가지 키워드로 읽는 ‘녹터널 애니멀스’

이 영화는 현실의 수잔, 소설 속 토니, 과거의 수잔과 에드워드를 교차 편집한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으며 과거 둘이 함께한 지극히 비밀스러운 순간을 추억한다. 그리고 그 소설을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라 받아들인다. 그 이야기가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하고, 잊은 줄 알았던 옛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2 소설 『토니와 수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은 미국 소설가 오스틴 라이트가 1993년 쓴 소설 『토니와 수잔』(오픈하우스)이다. 포드 감독은 “『토니와 수잔』은 아름다운 소설이고, 정말 좋은 이야기”라며 “소설로 전달되는 도덕적 우화, 소설 속 소설이 꽤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처음 읽은 순간부터 무척 마음에 들어 영화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드 감독은 오랜 작업 끝에 원작 소설과 조금 다른, 새로운 각본을 탄생시켰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주제 의식이다. 원작이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수잔이 에드워드를 이해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수잔이 소설을 매개체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데 중심을 둔다. 원작에서 가정주부이자 영문학 강사였던 수잔은 영화에서 미술관 관장으로 등장한다. “원작 소설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을 화면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떻게 보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원작에 충실하다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요소들과 배경이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포드 감독의 말이다.

3 에이미 애덤스와 제이크 질렌할

포드 감독이 각색한 시나리오를 본 에이미 애덤스와 제이크 질렌할은 곧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포드 감독은 애덤스에 대해 “말 없이도 혼이 담긴 눈빛과 표정을 통해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 극찬했다. 이에 대해 애덤스는 “내가 지금 딱 수잔의 나이”라며 “나이가 들면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는 수잔의 그런 면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잔은 자신이 되고 싶던 모습과, 자신이 선택한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포드 감독은 질렌할에 대해 “질렌할이라면 온몸을 던져 연기할 것이라 믿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질렌할은 “포드 감독의 각본을 읽고 정말 깊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며 “고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우리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으면 하는지, 어떻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 주는지를 다룬다”며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솔직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라 전했다. 중요한 조연 캐릭터 바비와 레이는 법의 양극단을 보여 주는 인물. 각각 마이클 섀넌과 애런 존슨이 연기한다. 포드 감독은 “바비와 레이는 수잔이 읽는 소설 속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그들은 수잔의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4 레드로 엮은 감정의 디테일

포드 감독은 옷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작은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리는 것은 데뷔작 ‘싱글 맨’(2009)부터 이어진 그의 특징이다. ‘녹터널 애니멀스’에도 다양한 디테일이 등장한다. 원작 소설에서 에드워드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외에 어떤 글도 쓰지 않는다”라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포드 감독은 이 말에 동의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보게 마련이라는 것. 그래서 포드 감독은 에드워드가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를 쓰는 장면에서, 과거 그가 수잔과 함께한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디테일을 표현하는 데 공들였다. 그는 “실제로는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극 중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던 것들을 기반으로 소설을 썼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색’이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에드워드는 자신의 단편소설을 읽고 지루해 하는 수잔을 보며 괴로워한다. 그 장면에서 수잔은 붉은 소파에 누워 있다. 이 기억이 뇌리에 박힌 에드워드는 소설에서 수잔 캐릭터를 살해하고, 그의 사체를 붉은 벨벳 소파에 올려 놓는다. 현실의 수잔이 일하는 사무실도 붉은색 포인트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 살인자가 운전하는 녹색 폰티악 GTO 차량도 수잔과 에드워드의 과거 일화와 관련돼 있다. “그들이 함께한 삶의 디테일들이 에드워드의 소설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많은 요소들 또한 이 영화의 각본에 많이 묻어났다.” 포드 감독의 말이다.

5 톰 포드, 관능을 아는 크리에이터

패션 디자이너로서도 이름을 날린 포드 감독은 데뷔작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녹터널 애니멀스’를 통해 자신이 관능적인 예술가이자 이야기꾼임을 입증했다. 1994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포드 감독은, 당시 쇠락하던 브랜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인물. 특히 패션계에서는 그를 “명품에 관능적이고 신비롭고 화려한 힘을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스크린은 포드 감독이 자신의 재능을 펼친 또 하나의 캔버스다. 미국 일간지 ‘뉴욕 포스트’는 “패션 디자이너답게 포드 감독은 어떤 영화보다 화려하고, 우아하며, 매혹적인 이미지의 성찬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오프닝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비만한 여성들이 나체로 몸을 흔드는 장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곧 그들의 몸이 클로즈업된다. 영국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의 ‘화살에 찔린 소’ 형상도 등장한다. 거친 육체,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복수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스크린을 압도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영화에 대해 “데이비드 린치 감독과 조엘·에단 코헨 형제 감독의 재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적 분위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강박적 디테일을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디테일이 많을수록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진다”고 말한 포드 감독. ‘관능의 크리에이터’가 추구하는 미의 가치와 감수성을 강렬한 이미지의 옷을 걸친 스릴러로 만나볼 차례다.

글=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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