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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기본사관은 「근대민족주의」" 중화주의 배척·일제서 자주 갈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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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독립기념관 개관경축 학술심포지엄이 독립기념관 부설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주최로 5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재조명』을 대주제로 김준엽씨(전 고려대총장) 의 「독립운동의 역사관」, 박영석씨(국사편찬위원장)의 「만주지역의 민족독립운동」, 윤병석씨(인하대교수)의 「1910년대 무장독립운동-미주지역 독립군사관 양성을 중심으로」, 진덕규씨(이대교수)의 「1930∼4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성격」, 신용하씨(서울대교수)의 「한말 의병운동의 기점의 새 제안」등이 발표된다.
김준엽씨는 미리 제출한 심포지엄 논문에서 독립운동의 기본사관을 근대민족주의의 역사관에 두어야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우리 근대사에서 두가지 독립의 과제가 중첩되었다』고 말하고 그 하나는 중화주의적 동아시아 정치질서로부터의 독립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침략으로부터의 국가주권회복이었다고 보았다.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이 건설하려했던 국가의 성격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으로 근대적 민족국가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그는 각종 외래 이데올로기의 색채를 띤 운동도 그 운동의 기본목표가 자주독립국가건설에 두어지고 있다면 민족주의 운동의 기본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신용하씨는 한말의병운동의 기점을 종래 1905년5월 강원도 원주에서의 원용구의 의병봉기 에서 보는데 자신은 1904년 7, 8월 서울·경기지방등에서 일어난 의병봉기를 신문·주한일본공사관 기록등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따라서 한말의병 운동을 ▲1904년의 재봉기 ▲1905년의 확대기 ▲1907∼1909년의 고양기 ▲1909∼1914년의 퇴조와 독립군으로의 전환기로 새로이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진덕규씨는 1930∼40년대 초의 국내독립운동에서 「독서회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930년대의 독립운동은 우파중심의 민족주의 이념이 그 투쟁논리와 전략차원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일반 민중의 삶의 현실성을 제대로 반영시키지 못하자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게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청년·학생층에 강했으며 독서회운동으로 나타나 1933∼1937년 5년간 독서회운동사건의 검거건수가 86건, 1만4천6백여명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서회운동도 사회주의적 지향안에 민족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민족운동의 범주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병석씨는 1910년대 미주에서의 무장독립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하와이·미주본토·멕시코등의 한인사회에서 독립군사관 육성교육이 활발히 전개되었다는 것. 1909년 6월 미국 네브래스카주 헤스팅즈에는 박용만등이 주도한 「한인소년병학교」가 설립되었고 1914년까지 1백여명이 배출되었다.
또 멕시코의 메리다 지방에서도 1910년 구한국 광무군인 출신 노동이민들의 숭무학교가 세워졌다. 이 학교에서는 1백여명의 사관이 양성되었으나 멕시코 혁명으로 1913년 폐교되었다.
하와이에서는 1914년 대조선국민군단이 편성되고 그 핵심체로서 대조선국민군 사관학교가 설립되어 1백20명의 병력에 이르고 『대조선군가』와 『국민군가』까지 만들었으나 1917년 해체되었다.
김준엽씨는 발표논문에서 독립운동사관의 정립을 거듭 강조, 식민통치사의 전환에 따라 독립운동의 시기를 구획하는 타율적 사관을 버리고 민족저항의 주체적 사관을 확립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성공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실패했으면서도 공헌이 큰 운동에도 관심을 두어야하며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웅주의사관은 불식시킬 것도 강조했다.<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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