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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사립초 영어 ‘몰래 수업’ … 공립초 엄마는 속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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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영어교육 딜레마

초등학교에서 영어는 3학년이 된 이후부터 배우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일부 사립초에선 1학년부터 편법으로 가르쳐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 당국은 ‘영어 교육은 3학년 이후에 가르쳐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사립초 학부모 상당수는 “현재 방식으론 공교육에서 영어를 충분히 배울 수 없다”며 “학교 수업으로 부족하다면 학원에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육시민단체는 사립초의 편법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사교육을 받게끔 방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사립초의 영어교육 실태는 어떤지, 공·사립 학부모는 각각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아봤다.

1~2학년 방과후 수업에 몰입교육까지
공립초 학부모 “경쟁 뒤처질까 걱정”
“ 사교육 의존 않게 수업 늘려야” 주장도

규정에는 ‘3학년부터 영어 정규 수업’
현재 초등학교에선 3학년부터 정규 수업에서 영어를 배운다. 주당 수업시간도 교육부가 3~4학년은 2시간, 5~6학년은 3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그런데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에 따르면 일부 사립초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정한 시간보다 많이 수업 하거나 1~2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은 서울의 사립초 10곳의 ‘2017학년도 신입생 입학설명회 자료’를 분석해 학교별 영어수업 실태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상당수 학교가 1~2학년 방과후 수업에 영어를 포함시키고 사실상 모든 학생이 배우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교는 영어 방과후 수업을 아예 정규 수업 시간에 편성하고, 비용을 공식 수업료에 포함시켰다. 1~2학년에서 영어 수업을 ‘필수화’ 한 셈이다.

한 사립초는 수학·과학·사회 등 영어 이외의 과목을 영어로 진행한다고 학부모들에게 안내했다. 이른바 ‘영어몰입수업’으로 불리는 이같은 교육은 2013년 이후로 학교에서 금지됐다.

사교육걱정은 문제가 발견된 학교들을 특별 감사하도록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에 요구했다. 사교육걱정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사립초에서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면 마음이 급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영어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 사립초의 위법을 방치하면 사립초와 공립초 간의 교육격차가 커지고, 전체 학생이 영어 사교육에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 “정규 수업만으론 힘들어”
공립초 학부모들은 사립초의 이런 실태를 대체로 곱지 않게 본다. 공립초에 다니는 자녀를 둔 전성미(34·서울 마포구)씨는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공립 학부모들은 바보가 되는 기분”이라며 불쾌해 했다. “공립초에선 영어 수업시수를 지키는데, 사립초에서 이를 어기고 더 많이 시키면 교육과정을 제대로 지킨 공립초 학생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초등학교만큼은 교육에서 편법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립초에선 왜 규정을 어기며 영어 수업을 늘리는 것일까. 사립초 학부모 중 상당수가 원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정규 수업만으로는 아이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사립초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35·서울 마포구)씨는 “정부에서 정해 놓은 수업시간으론 영어 교육이 불충분하다. 학교에서 제대로 영어 수업을 못 해준다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 보충 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립초 학부모도 일부는 이런 입장에 공감한다. 공립초 학부모 김진희(45·경기도 일산)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지만 영어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학교에서 영어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한 사립초등학교의 입학설명회 자료. 전체 수업료에 영어 방과후 수업 비용이 포함돼 있다.

한 사립초등학교의 입학설명회 자료. 전체 수업료에 영어 방과후 수업 비용이 포함돼 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는 1997년에 정규 과목에 포함됐다. 이때 이후로 3학년부터 정규 수업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사립초에선 이를 어기고 1학년부터 영어 교과를 가르치는 곳이 나왔다. 영어 수업도 교육부가 정한 주당 2시간보다 훨씬 많이 했다. 급기야는 과학·사회 등 다른 과목마저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도 나왔다. 이른바 ‘영어몰입수업’이다.

사립초에서 영어교육이 과열되자 2013년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사립초 영어교육 정상화 계획’을 발표했다. 1~2학년은 영어를 교육과정에 편성할 수 없게 했다. 영어 외의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것도 금지했다. 대신에 2018년 2월까지 초1~2학년 대상의 영어 방과후 수업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학습 수요 맞춘 교육과정 개정 논의 필요
그럼에도 사립초 학부모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영어 교육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사립초의 위법 실태를 단속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사립초 영어 교육 실태를 지적한 사교육걱정도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사교육걱정 안 부소장은 “주당 2~3시간의 영어수업을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부모라면 학교에서 규정대로 할 경우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1학년부터 영어를 정규 수업에 넣고 시간도 늘리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준언 숭실대 교수(영어영문과)도 “영어수업 시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초등학교에서 제공하는 영어 교육은 양과 질에서 학부모와 학생의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영어 교육 수요와 학습권을 총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거나 영어수업 시간을 늘리면 학생의 학업 부담만 커지고 학습 효과는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한상윤 초등교육과장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 교육을 받은 아이보다는 모국어 수준이 높은 아이에서 영어학습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열된 학습 수요를 제도적으로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공교육 기관의 책무”라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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