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서 담배 피우면 10만원, 금연아파트 전국에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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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하남 위례신도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33)씨는 지하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쾌감이 든다. 냄새도 냄새지만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내리는 공간이라 건강도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아파트에선 흡연을 둘러싼 다툼이 적지 않다. 단지 내 산책로에서 흡연자와 주민 간에 말다툼이 벌어지는가 하면 주민이 버린 담배꽁초 탓에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불도 났다. 이에 한 주민이 온라인 카페에 “흡연 문제가 불쾌감을 넘어 입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가 됐다”며 ‘금연아파트’ 지정을 제안했고 현재 상당수 주민의 호응 속에 절차를 밟고 있다. 김씨는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면 간접흡연 민원이 크게 줄어들 것 같다”고 기대했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금연아파트(공동주택 금연구역지정)’로 지정된 단지는 전국적으로 모두 23곳이다. 서울이 16곳으로 가장 많고 기초 지방자치단체별로는 강남구가 4곳으로 1위다. 또 신청 절차를 진행 중인 아파트도 여러 곳이어서 금연아파트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제도가 도입된 지 불과 4개월가량 된 점을 고려하면 꽤 빠른 추세다.

전체 가구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복도·지하주차장 등 구역별 지정
제도 도입 4개월 만에 23곳으로
놀이터는 금연구역에 해당 안 돼
국토부, 집안 흡연도 제재 추진
“사적 공간…사회적 합의 필요”

현행법상 전체 가구의 50% 이상 동의를 받아 금연아파트 지정서를 제출하면 시장·군수·구청장이 공용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계단·복도·엘리베이터·지하 주차장 등이 대상이다. 이를 어겨 적발되면 최대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파트뿐 아니라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기숙사 등도 신청 가능하다.

하지만 금연아파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연구역 지정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지정 가능한 곳이 계단·복도·엘리베이터·지하 주차장 등 4곳뿐인 데다 이마저도 구역별로 동의를 받아 따로 신청해야만 한다. 놀이터는 아예 빠져있다. 실제로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서울 개포현대1차 아파트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만 금연구역이 됐고, 서울 목동 11단지 아파트와 미아 현대아파트는 각각 지하 주차장과 복도가 금연구역에서 제외됐다. 권병기 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구역을 더 추가할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금연아파트가 되더라도 간접흡연 피해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실내 흡연에 대해선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4년 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국민신문고 등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간접흡연 민원 1464건 중 808건(55.2%)이 베란다나 화장실 등 집 내부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세대 내 흡연을 제재할 수 있도록 공동주택관리법을 연내에 개정할 계획이다. 공동주택 층간 흡연 피해방지를 의무화하고 관리소장 등 관리주체에게 실내 흡연 중단을 권고하거나 사실관계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과태료 부과 같은 법적 조치는 포함되지 않아 실효성을 두곤 논란이다.

해외에선 아예 공공주택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곳이 여럿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06년부터 단독주택을 제외한 모든 장소에서 전면 금연토록 하고 있다. 또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2010년부터 대부분의 공동주택에서 100% 금연정책을 실시 중이다. 금연운동을 벌여온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집 안 등 사적 공간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려면 상당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규제가 필요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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