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한·일 관계도, 두둑해진 뱃살도 ‘축구를 통한 화합’을 바라는 양국 축구 레전드들의 열의를 막지 못했다.
일본 시즈오카서 레전드 친선 축구
장대비·강풍에도 노장 선수들 투혼
최성용 발리슛…한국이 4-0 완승
1990년대 축구 한·일전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 양국 국가대표 출신 레전드 축구인들이 8일 일본 시즈오카 쿠사나기종합경기장에서 친선경기를 펼쳤다. 시즈오카현(縣)축구협회가 주관하고 한·일 양국 축구협회가 후원한 이벤트 매치였다.
경기 전 한국 라커룸에선 엄중했던 예전의 한·일전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신홍기(49) 전 전북 코치가 “40, 50대 중년 15명이 전·후반 40분씩 소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 두 명쯤은 뛰다 쓰러질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자 폭소가 터졌다. 유니폼을 받아 입더니 “요즘은 유니폼이 너무 달라붙는 스타일이라 민망하다”며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지휘봉을 잡은 김정남(73) OB축구회장이 “쓰러져도 좋으니 한 골만 먼저 넣으라”고 주문했다. 서정원(46) 수원 삼성 감독은 “현역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일전을 앞둔 라커룸 분위기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맑았던 시즈오카 날씨는 공교롭게도 경기 당일 요동쳤다. 장대비와 강풍이 몰아치면서 중년의 선수들을 괴롭혔다. 킥오프 전까지도 “비까지 오면 체력적으로 더 힘들어진다”던 선수들도 그라운드에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투혼을 불태웠다. 전과 같지 않은 체력에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였고 실수도 많았지만, 빗속에서도 열성적으로 응원한 3000여 관중의 성원에 보답하려는 듯 한 걸음 더 움직였다.
결과는 한국의 4-0 완승. 김도훈(46) 울산 감독의 헤딩골과 최성용(41) 수원 코치의 발리슛 득점으로 전반에만 두 골 차로 앞섰다. 후반에는 오노 신지(38·콘사돌레 삿포로) 등 일본의 ‘젊은’ 선수들을 맞아 수비 전술로 맞서다가 임근재(48) 대신중학교 감독이 두 골을 보태 점수차를 벌렸다.
이번 경기를 기획한 우에지 조타로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국제위원은 “최근 양국 관계가 안 좋지만 경기장에서는 모두 화목하고 행복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북한까지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시즈오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