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에 유니폼 안 맞아도 “한·일전은 이겨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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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어붙은 한·일 관계도, 두둑해진 뱃살도 ‘축구를 통한 화합’을 바라는 양국 축구 레전드들의 열의를 막지 못했다.

일본 시즈오카서 레전드 친선 축구
장대비·강풍에도 노장 선수들 투혼
최성용 발리슛…한국이 4-0 완승

1990년대 축구 한·일전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 양국 국가대표 출신 레전드 축구인들이 8일 일본 시즈오카 쿠사나기종합경기장에서 친선경기를 펼쳤다. 시즈오카현(縣)축구협회가 주관하고 한·일 양국 축구협회가 후원한 이벤트 매치였다.

8일 한일 축구 레전드 매치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승리를 다짐한 한국 선수단. [시즈오카=송지훈 기자]

8일 한일 축구 레전드 매치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승리를 다짐한 한국 선수단. [시즈오카=송지훈 기자]

경기 전 한국 라커룸에선 엄중했던 예전의 한·일전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신홍기(49) 전 전북 코치가 “40, 50대 중년 15명이 전·후반 40분씩 소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 두 명쯤은 뛰다 쓰러질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자 폭소가 터졌다. 유니폼을 받아 입더니 “요즘은 유니폼이 너무 달라붙는 스타일이라 민망하다”며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지휘봉을 잡은 김정남(73) OB축구회장이 “쓰러져도 좋으니 한 골만 먼저 넣으라”고 주문했다. 서정원(46) 수원 삼성 감독은 “현역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일전을 앞둔 라커룸 분위기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맑았던 시즈오카 날씨는 공교롭게도 경기 당일 요동쳤다. 장대비와 강풍이 몰아치면서 중년의 선수들을 괴롭혔다. 킥오프 전까지도 “비까지 오면 체력적으로 더 힘들어진다”던 선수들도 그라운드에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투혼을 불태웠다. 전과 같지 않은 체력에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였고 실수도 많았지만, 빗속에서도 열성적으로 응원한 3000여 관중의 성원에 보답하려는 듯 한 걸음 더 움직였다.

결과는 한국의 4-0 완승. 김도훈(46) 울산 감독의 헤딩골과 최성용(41) 수원 코치의 발리슛 득점으로 전반에만 두 골 차로 앞섰다. 후반에는 오노 신지(38·콘사돌레 삿포로) 등 일본의 ‘젊은’ 선수들을 맞아 수비 전술로 맞서다가 임근재(48) 대신중학교 감독이 두 골을 보태 점수차를 벌렸다.

이번 경기를 기획한 우에지 조타로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국제위원은 “최근 양국 관계가 안 좋지만 경기장에서는 모두 화목하고 행복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북한까지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시즈오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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