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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의 승마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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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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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럽다. 장애물을 넘지 않고 나무로 돌진하던 말이 선수를 나무와 부딪히게 해 떨어뜨리는 장면 말이다. 그런데 그 선수가 정유라란다. 최근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기수에게 복수하는 말’이라는 동영상이다. 그럴듯해 보였다. 승마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마장마술 선수인 정유라는 장애물 경기를 해본 적이 없어 영상의 주인공이 아니란다. 하지만 진위와는 상관없이 말에게 복수당한 기수는 정유라가 되고 있다.

승마는 체중·나이·성별 구분이 없는 종목이다. 기수가 되려면 체중을 48㎏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 경마와는 달리 세계적인 남자 승마 선수들은 80㎏ 내외로 건장하다. 2014년 아시안게임 때 정유라처럼 남녀 동반 출전이 가능하고 올림픽에는 70대도 나온다. 종목은 장애물비월·마장마술·종합마술 세 가지. 마장마술은 가로 60m, 세로 20m의 마장에서 말과 사람이 펼치는 연무(演舞)다. 유연한 동작과 율동미가 포인트로 승마의 체조이자 발레로도 불린다. 6~7분 동안 평균 25개의 동작을 소화하려면 말과 선수의 호흡이 중요하다. 말이 선수, 선수가 말이 되는 일심동체의 경기다.

승마엔 ‘마칠인삼(馬七人三)’이란 은어가 있다. 말 실력이 성적의 70%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말이 둔하면 선수가 아무리 용을 써도 허당이다. 그래도 말은 말일 뿐이다. 선수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연습하며 교감하지 않으면 명마가 둔마가 된다. 말만 믿고 게으름 피우다간 동영상의 기수처럼 말에게 당하는 법이다.

말 덕분에 이화여대에 부정입학하고 공짜 학점을 즐겨온 정유라는 어떨까. 국내 경기를 할 때 심판까지 매수했다는 ‘마칠심삼(馬七審三)’ 의혹에 휩싸였던 그의 진짜 승마 실력 말이다. “좋은 말만 타는 데도 연습을 안 해 국내 10위권 수준”이라는 게 승마계 평이다. 그런 정유라는 그랑프리 우승 명마(비타나 V)까지 거저 얻었다. 말 값만 15억~18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그 말을 타고 세계 100위 안에 못 든다면 말 값도 못하는 것이다.

국제승마연맹(FEI) 홈페이지를 보니 세계 랭킹이 569위다. 말 탈 시간에 반려동물과 소꿉놀이를 했으니 당연지사. 이런 실력으로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나가겠단다. 비뚤어진 엄마와 비싼 말에 얹혀 살아온 21세 ‘공짜 인생’은 덴마크에서 자진 입국을 거부하며 버틴다. 말 타는 것도, 대학 진학도 최순실이 다 시켜서 했다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일까. 말 없는 말도 화가 났을 게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