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당만 상대하는 중국…왕이, 이례적 직접 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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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급)이 모처럼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송영길 의원 등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방중단을 만난 자리에서다. 지난해 7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 뒤 한·중 관계가 삐걱댄 이래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중국이 작심하고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야당을 상대로 ‘편 가르기 외교’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부·국회와 교류 중단 상태
김장수 면담요청 두달째 묵묵부답
여론 흔드는 ‘편가르기 외교’ 분석

더구나 중국의 외교 수장이 야당 의원들만으로 구성된 방중단을 만나준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5일 아프리카 순방을 하루 앞두고 왕 부장이 야당 의원들을 만난 것은 중국 정부가 그동안 김장수 주중 대사 등 한국 정부 인사들의 면담 요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 주중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 사이에선 “한류 제한 조치(한한령·限韓令)와 관련한 김 대사의 광전총국장 면담 요청에 두 달 이상 중국 측이 묵묵부답”이라며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과장급 외교관 사이의 실무 접촉도 거의 차단된 상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물론 한국 국회와의 교류도 중단 상태다. 지난해 12월로 일정을 잡았던 양국 의회 간 정기 교류체인 국회 부의장급 교환 방문은 명단을 통보해 온 상태에서 중국 측이 일방적으로 연기해 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정치협상회의(정협)와의 연례 바둑 교류 행사조차 중국 측이 갑자기 일정 취소를 통보해 왔다.

하지만 중국 측은 야당 의원들의 방중을 계속 받아들이며 고위 당국자와의 면담에도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은 12월 5일 이인영·김영호·정춘숙·강훈식 의원으로 구성된 야당 방문단과 회견했다. 또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자격으로 포럼 참석을 위해 방문한 민주당 소속 심재권 의원과 따로 면담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송영길 의원 일행을 포함해 일련의 야당 의원 방중 일정 조정은 주한 중국대사관을 창구로 긴밀하게 조정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8월에는 신동근 의원 등 민주당 초선 의원단 6명이 중국을 찾아 학계·싱크탱크 인사들과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이 밖에 정세균 국회의장의 방중이 2월 성사를 앞두고 막바지 조정 단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 인사는 “정 의장이 야당 소속이 아니라 여당 소속이라면 중국 측이 지금처럼 초청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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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황으로 인해 중국이 사드 문제에 관한 한 비교적 중국 정부의 입장에 가까운 야당 의원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편 가르기 외교’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베이징 소식통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거나 신중한 입장인 야당만을 상대해 자국 입장을 전파하고, 한국 국내 여론을 흔들려는 게 중국의 노림수가 아니냐”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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