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 꽃·단·장 나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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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신촌의 한 네일아트 전문점. 매장 한가운데 의자에 앉은 30대 초반의 남성이 20대 여성으로부터 손톱 손질을 받고 있다. 그는 손톱 끝을 둥글게 갈아 정리하고 손톱 뿌리 쪽의 굳은살을 제거한 뒤, 손톱 영양제를 바르는 서비스를 받았다. 업소 측은 "100명 중 5명은 남성 고객"이라며 "남성 손님이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지만 점점 당당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꽃 단장'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다양한 화장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명품 의상과 장신구에 지갑을 열고,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남성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 꽃 단장 열풍=최근 남성만을 대상으로 피부 관리를 해 주는 이른바 '그루밍숍(grooming shop.마부의 말 관리에서 유래한 용어)'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나 타인과의 접촉이 잦은 영업 담당 직장인이 많이 찾는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그루밍숍을 찾은 고모(45)씨는 "요즘 주변에서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해 자신감이 생겼다"며 "한 번에 10만~20만원 정도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네일아트숍에서 손톱을 다듬고, 체형관리실에서 몸매를 가꾸는 등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곳에도 남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코를 높이거나 쌍꺼풀 수술을 받으려는 남성도 증가해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남성 전용 성형외과 수십 곳이 성업 중이다. E성형외과 심형보 원장은 "우람하고 탄력적인 가슴을 만들기 위해 가슴 성형을 받는 남성이 10년 새 7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들은 주름 제거용 등 남성 전용 기능성 화장품을 앞다퉈 시장에 내놓고 있다. 남성용 색조 화장품도 등장했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지만 남성 화장품 시장은 매년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삼성동 현대백화점에는 7개 남성 화장품 브랜드에서 남성 전용 매장을 운영 중이며, 한 화장품 업체는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쇼핑몰에 매장을 열기도 했다.

◆ 경쟁 심화의 산물?=전문가들은 화려한 남성상이 확산하는 것은 '외모가 곧 경쟁력'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학력 미취업자의 증가, 화이트칼라의 잇따른 실업 등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무기력감을 느끼는 젊은 남성이 지적 능력보다는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외모에 투자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이 맘에 드는 남성을 골라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는 등 남녀 관계에서 여성의 선택권이 넓어진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는 "1970~80년대 사회에서는 학벌이나 직장으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됐지만, 요즘은 외모가 개인의 능력을 결정 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학력과 같은 내적 능력은 당장 바꿀 수 없지만, 외모와 몸매 등은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고 그 결과가 개인의 경쟁력 향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강은나래(연세대 4년).김천열(한국외대 2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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