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각보다 똑똑한 닭···닭띠 해에 알아보는 닭의 과학

중앙일보

입력

적갈색 긴꼬리 토종닭. [중앙포토]

적갈색 긴꼬리 토종닭. [중앙포토]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닭띠 해. 닭은 우리 인류와 함께 오랜 시간 살아왔고, 21세기를 사는 도시민들에게도 적어도 식생활에서 만큼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하지만 닭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닭띠 해를 맞아 과학적인 측면에서 닭을 한번 살펴봤다.

<기원: 동남아에서 시작>

닭이 처음 가축화돼 인류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것은 5000여 년 전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파악되고 있다. 호주 뉴잉글랜드대학 연구팀이 2012년 고대 유적지에서 수습된 48개의 닭 뼈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다. 유럽과 태국, 태평양지역, 칠레, 미국 등에서 나온 닭 뼈는 오래 전 동남아시아의 한 지역에서 사육되기 시작한 조상 닭의 후손임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닭은 최소한 5400년 전부터 사육되기 시작했고, 인류 집단이 이동할 때 닭들도 함께 이동하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셈도 하고 100마리 얼굴도 서로 기억
암수 비율 맞지 않으면 '무한 투쟁'도

전 세계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은 야생닭, 즉 적색 정글 닭(red jungle fowl)에서 유래했으며., 사람들이 사육하는 과정에서 회색 정글 닭(grey jungle fowl)도 유전자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노란색 다리: 효소의 이상>

닭의 다리가 노란색을 띠는 것은 카로티노이드가 분해되지 않고 쌓인 탓이다. 지난 2008년 스웨덴 웁살라대학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사육되는 닭의 다리 색깔을 노랗게 만드는 유전자 지도를 작성했다. 닭다리를 노랗게 만드는 유전자는 야생닭인 회색 정글 닭(grey jungle fowl)으로부터 왔다는 게 웁살라대학 연구팀 결론이다.

닭다리의 피부가 노란 것은 닭다리 피부에서는 카로티노이드 분해해서 비타민A를 생산하는 효소 기능이 정지된 탓이다. 다른 조직에서는 이 효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닭다리에서는 카로티노이드가 분해되지 않고 쌓이고, 그 때문에 노란색을 띤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논쟁을 벌였던 주제다. 한편에서는 닭이 있어야 달걀을 낳을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달걀에 이미 닭이 들어있어야 닭으로 부화할 것이 아니냐고 맞서왔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달걀이 먼저다. 유성생식을 하는 닭으로서는 암탉과 수탉이 만든 성세포(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수정란이 있어야 번식이 가능하다. 닭이 아닌 야생 조류가 갑자기 혼자서 암탉으로, 혹은 수탉으로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없던 닭이 태어나려면 수정란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최초로 닭이 부화해 나온 달걀은 닭이 아닌 새가 낳은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완전히 엉뚱한 야생조류가 아니라 닭과 가까운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온 야생조류가 낳은 알이라야 달걀이 될 수 있다.

한편 달걀은 구형이 아닌 타원형이지만, 완전한 구형의 달걀이 나올 수도 있다. 완전한 구형의 달걀이 나올 확률은 10억 분의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학을 하는 병아리>

2009년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과 토렌토 대학 연구팀은 병아리도 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먼저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들을 노란 공들과 함께 생활하도록 해서 노란 공을 한 식구로 여겨 따라다니도록 ‘각인’을 시켰다.

그런 다음 낚싯줄 두 개에 노란 공 개수를 달리해서 매단 다음, 두 개의 가림막 뒤에서 낚싯줄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병아리들이 공의 움직임을 보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병아리들이 들어있던 투명 상자의 문을 열어주었더니 병아리들은 매번 공의 숫자가 많은 쪽의 가림막 뒤로 찾아갔다. 사전에 아무런 훈련을 받지 않고도 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쪼는 순위: 사회적 서열>

학자들은 닭이 결코 민주적인 종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합의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신 ‘쪼는 순위(pecking order)’로 정해진 집단 내 서열을 지킨다는 것이다.
닭의 집단에서 가장 강한 우두머리는 집단 내 모든 닭을 쪼아대기만 할 뿐 쪼이지는 않는다. 반대로 집단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닭은 쪼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닭들이 서로 만나면 서로 쪼아대면서 누가 힘이 센 지를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서열이 정해진다. 일단 집단 내에서 서열이 정해지면 평화가 찾아온다. 이게 ‘쪼는 순위’다.

닭들은 약 100마리 정도까지는 서로 얼굴을 기억한다. 아울러 서열을 기억하는 셈이다. 몇 달을 떼어놓았다가 다시 집단에 넣어도 이런 기억은 서로 유지된다.

하지만 100마리가 넘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열을 기억하지 못해 끝없이 피 흘리고 싸우는 ‘무한 투쟁’으로 바뀐다. 이 때문에 양계장에서는 닭의 부리를 잘라내 서로 싸우더라도 심한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방지하기도 한다.

<암수 비율: 너무 거친 수탉>

암탉과 수탉 두 마리만 있으면 수탉은 하루 종일 암탉과 교미를 하려 든다. 지배를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폭력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암탉은 꼬리 깃털까지 잃게 되고 건강도 해치기 일쑤다. 수탉 한 마리당 암탉 숫자가 6마리 미만이면 암탉의 건강이 문제가 된다.

수탉은 암탉보다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는 데 훨씬 적극적이다. 수탉은 많고 암탉의 숫자가 작으면 집단의 서열은 곧잘 붕괴돼 끝없는 투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적당한 암수 비율을 맞추는 것은 수탉 사이에 싸움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농장 주인은 수탉 한 마리 당 암탉을 10~12마리 비율로 풀어놓아야 한다. 실제로 닭 집단은 한 마리의 강력한 수컷과 10~12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 '하렘'으로 나뉘는 경향을 갖고 있다.

<해가 떠야만 수탉이 홰를 칠까>

수탉이 홰를 친다고 할 때, 홰는 닭이나 새가 앉을 수 있도록 가로질러 놓은 나무막대를 말한다. 홰를 친다는 것은 새나 닭이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자신의 몸통을 치는 것을 말한다. 홰에 올라 몸통을 치다보면 홰까지 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글들에서는 수탉이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푸드득 거리면서 동시에 큰 울음소리까지 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수탉이 새벽에 홰를 치지만 일출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3년 일본 나고야(名古屋)대 연구팀은 빛과 소리 조건을 달리하면서 실험을 한 결과, 수탉이 홰를 치는 것은 해가 뜨는 것을 느껴서가 아니라 ‘체내 시계’로 불리는 생체리듬에 따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외부 자극과 무관하게 수탉은 하루 24시간과 비슷한 평균 23.7시간 마다 한 번씩 홰를 쳤다는 것이다. 이런 ‘체내 시계’는 닭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이나 호수 표면과 깊은 곳을 오르내리며 광합성을 하는 식물성 플랑크톤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닭들은 3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면서 소통한다. 소리를 통해 위험과 두려움을 공유한다. 또 짝짓기와 영역 구분, 둥지 틀기, 먹이 발견 등과 관련해서도 그때그때 다른 소리를 내며 정보를 교환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