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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일화 남긴 「최후의 해병」|고질병 아들 죽이고 자살한 이동용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해군제2참모차장(해병사령관)을 지내고 수협중앙회장등을 거쳐 경영인으로서의 길을 걷던 예비역 해군중장 이동용씨(60)가 간질병등을 앓아오던 장남을 살해한뒤 암매장했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씨는 27년동안 해병에 몸담아 주월 청룡부대장·해군 제2참모차장등을 지냈으며 예편한 뒤에는 울산석유화학대표·수협중앙회장등을 거쳐 84년9월부터는 고향인 충북의 유지들이 출자한 청주개발의 공동대표이사직을 맡아 의욕적으로 일해왔다.
이씨는 이같은 사회활동과는 달리 큰아들 민희씨의 간질병 때문에 평소 술만 마시면 측근에게 『자식 복이 없다. 사람답게 살게 하려는데 잘 안된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왔었다는 것.
아들 민희씨가 처음 간질병 증세를 일으킨 것은 국교4학년에 재학중인 10살 때. 민희씨는 2살때 뇌막염에 걸려 치료를 받은 일이 있으나 국교에 입학해 줄곧 공부를 잘하는등 주변의 귀여움을 받아오던중 발작증세를 보였다는 것.
이씨는 아들의 병을 치료해주기 위해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55)에게 1년여동안 보낸 일도 있으나 발작이 심해 치료하지 못하고 중3때 돌아왔다.
민희씨는 영어를 잘해 고교과정인 대전 외 국인학교를 졸업했으나 병때문에 대학진학도 포기했다. 이씨는 아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기르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시켰으나 발작만 하면 포악해져 그마저 도중에 제대하고 말았다.
5년전엔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을 시켰으나 발작 때문에 3개월만에 부인이 달아나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83년 민희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뇌단층촬영을 한 결과 뇌세포가 70∼80세의 노인처럼 파괴돼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부터 이씨는 아들이 형제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아갈수 있게 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왔다.
따로 사람을 붙여 서울퇴계로에 제과점을 차려주기도 했으나 민희씨의 씀씀이가 헤퍼 곧 문을 닫은 일도 있었다.
민희씨의 병은 갈수록 악화돼 한번 발작을 하면 집안 물건을 마구 부수고 손님들에게 폭행을 해 이씨를 고통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씨는 지난17일 경찰로부터 민희씨 사체발견 사실을 통보받은뒤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술만 마시며 지냈다는 것.
특히 경찰의 수사가 가족에게도 모아지게 되고 부인마저 몸져누워 병원에 입원하자 헛소리를 하는등 정신이상증세까지 보였다는 것.
가출하기전인 지난21일에는 운전사 박씨와 함께 나가 만취된채 롤렉스시계등 소지품을 모두 잃고 경기도 안양파출소에 보호되어 있는 것을 가족들이 데리고온 일도 있었다.
이씨는 서울대법대 4학년에 재학중인 50년 6·25가 발발, 간부후보생2기로 입대해 군에 몸을 담았다. 77년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예편할때까지 줄곧 해병에 몸담아 오면서 해병헌병감·주월청룡부대장등을 역임했으며 중령때인 64년 서울대법대에 복학, 남은 1학기를 마치고 졸업했다.
군시절 이씨는 부하들로부터 지와 용을 겸비한 지휘관으로 존경을 받았었으며 75년 사단장시절에는 『장교가 솔선해 해병에게 용기를 심어줘야 한다』며 직접 공수낙하훈련에 참가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때문에 주변에선 그를「마지막 해병」「영원한 해병」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씨는 고향인 충북 보은을 중심으로 한 충북지역에서도 발이 넓어 지난 선거때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꿈꾸기도 했었다.
한편 이씨는 28일 국립묘지 제1장군묘역에 안장됐는데 이씨가 아들을 숨지게 하고 사체를 유기했다 하더라도 그가 이미 사망했으므로 형사소추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유죄증명을 할수 없어 국립묘지 안장에 따른 법적시비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묘지 관계자는『이같은 전례가 없어 단언키는 어려우나 이씨 본인이 사망했으므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20년이상의 군복무자나 군장성등은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돼있다.
다만 군인사법 10조2항의 규정, 즉 금치산자나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안장대상에서 제외시킬수 있다. <이덕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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