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실종된 경제, 복합 위기 헤쳐나갈 수 있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2호 2 면

경제위기 경고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경제의 두 바퀴인 수출과 내수가 끝 모를 침체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실업률은 치솟고, 괜찮은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시장 혼자 경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위태롭기만 하다.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쌓아 올려 만든 ‘착시 활황’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초저금리라는 착시 현상이 사라지면 곧바로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다. 여기에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과 현대차의 품질 논란이라는 돌발 악재까지 가세했다. 한국 제조업의 쌍두마차마저 신뢰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가계와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에도 위기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악재가 겹치면서, 올 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증상들의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점이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로 규정된 1997년, 2008년과 달리 실물과 금융, 국내와 해외, 단기와 장기 요인들이 뒤섞여 있다. 해법을 찾기도 그만큼 어렵다. 수출 부진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경제의 체질 전환의 결과다. 중국의 부품·중간재 생산기지라는 한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내수 침체는 오랜 저출산·고령화의 산물이다. 이에 비례해 잠재성장률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미래 세대가 써야 할 돈을 미리 꺼내 쓰는 셈인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호황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대표 기업들의 품질 논란은 중국 같은 후발국의 원가 경쟁력과 선진국의 혁신역량 사이에 낀 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아할 정도로 무사태평하다. 말로는 물론 위기를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 핵과 미사일로 인한 안보 위기와 대내외적 악재로 인한 경제위기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제장관회의에서 “비상한 각오로 임하겠다”며 격주에서 매주로 회의 주기를 단축했다.


하지만 말뿐이다.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관료들은 외환보유액과 국가신용등급 같은 산술적 지표를 내세우며 “다른 나라에 비하면 괜찮다”고 강조하기 바쁘다. 해결이 급한 현안 앞에선 현실을 외면하거나 책임을 떠넘긴다. 경제장관회의엔 장관이 아닌 차관들이 주로 참석한다. 위기를 인식하고 해법을 모색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만 해도 그렇다. 8월 말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준비 안 된 구조조정의 민낯을 드러냈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와 수출 관련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구조조정 담당인 금융위원회의 손발이 안 맞고 준비도 부족했다. 물류대란 책임을 한진해운에 돌리기 급급했다. 지금도 대우조선해양의 존폐를 둘러싼 부처 간 이견이 해소되고 있지 않다. 부동산 대책은 말하는 사람과 시점에 따라 갈피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자기 일을 남 얘기하듯 하는 관료, 다른 부처 탓을 하는 관료도 적지 않다.


이를 조정할 사령탑은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올인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언급과 관심은 그만큼 줄었다. 경제정책 총괄자인 경제부총리는 오히려 혼란과 불확실성을 부추기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최근 며칠 새 ‘강남권 투기과열지구 지정’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하향 조정’과 같은 민감한 얘기를 거론했다가 기획재정부 이름으로 곧바로 부인하는 해명 자료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은행 총재와 “재정의 여력이 있다” “금리의 역할이 있다”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업과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누구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경제는 가위 ‘퍼펙트 스톰’ 앞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호’라는 배를 구하기 위해 짐은 물론 승객 일부까지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그런데도 도통 선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 역할을 맡아야 할 이들은 마치 승객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다가올 파고를 헤쳐나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50년간 이어온 경제 발전의 역사, ‘한강의 기적’을 만든 역동성이 이대로 소진될까 봐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