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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소쇄옹이 지은 정원에 ‘천국의 꿈’ 입힌 김인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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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23면

1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 광풍각. 앞으론 개울이 흐르고 오른쪽엔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대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김인후

소쇄원(瀟灑園)은 전남 담양에 있다. 1983년에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꿈이 좌절되자 충격을 받은 그의 제자 소쇄옹 양산보(1503~1557)가 벼슬길을 등지고 낙향하여 지은 정원이다. 소쇄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하서(河西)(1510~1560)의 꿈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조광조에 의해 불타올랐던 이상사회 건설의 꿈은 기묘사화로 인해 좌절되었지만, 그 꿈은에 의해 다시 불타올랐다. 하서는 인종의 스승이다. 세자 시절부터 인종을 가르쳤다. 하서는 인종이 성군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자질과 인품을 갖췄다고 봤다. 인종을 잘 보좌한다면 조광조가 이루지 못했던 이상사회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걱정이 있었다. 어린 나이로 즉위한 인종이 독살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인종은 재위 1년도 못되어 독살되고 말았다.


하서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고, 꿈을 접어야 하는 좌절이었다. 그는 고향 장성으로 내려가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 해마다 인종의 기일이 되면 난산에 올라가 북쪽을 향해 통곡했다. 그러면서 하서는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라도 지상천국을 건설하자. 그러면 그것이 불씨가 되어 온 세상에 천국이 찾아오겠지.” 친구이자 사돈인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을 보고나선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소쇄원에 ‘천국의 옷’을 입히자고 생각했다. 지금의 소쇄원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동산 원(園). 인품이 맑고 깨끗하여 속기(俗氣)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천사들이 사는 천국이란 뜻이다.

3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면 울창한 대나무 숲이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을 반겨준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대나무 숲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대나무 숲을 거닐면 세파에 시달렸던 마음이 쭉쭉 펴진다. 대나무 숲을 지나면 정자가 나온다. 대봉대(待鳳臺)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봉황을 기다리는 집이란 의미다. 두인도 없고 낙관도 없다. 누가 썼는지 알 수가 없다. 현판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의 글씨인지, 얼마나 값이 나가는 작가의 글씨인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세속의 관심사일 뿐 천국에선 의미가 없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누가 썼더라도 모두 천국의 사람이 쓴 글씨이기 때문이다. 고려자기에도 작가의 이름이 없고 조선의 백자에도 작가의 이름이 없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속이 천국과 구분되는 것은 차별 때문이다. 장미꽃은 값이 비싸고 비싼 만큼 아름답지만 오랑캐꽃은 값을 쳐주지 않는다. 따라서 오랑캐꽃은 아름답다고 칭송받지 못한다.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장미꽃과 마찬가지로 오랑캐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태양볕이 내리쬐였고 비도 내렸다. 사계절이 순환했고, 소쩍새도 울었다. 온 우주가 동원되어 겨우 오랑캐꽃 한 송이를 피운 것이다. 오랑캐꽃 한 송이는 세속에선 천하게 여겨지지만 천국에선 우주의 주인공 대접을 받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천국에서 사람은 우주의 주인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한 봉황과 통한다. 설사 속세에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천국에선 우주의 주인공이란 본래의 모습으로 대접받는다. 대봉대는 우주의 주인공으로 부활한 사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대봉대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주인공으로 부활한다.


주인공으로 부활한 사람들에게 소쇄원의 주인은 안내자를 보낸다. 바로 담장이다. 담장이란 들어오지 말라고 만드는 것이지만, 소쇄원의 담장은 사람들을 안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리로 들어오시라”고 담이 손짓을 한다. 소쇄원의 담엔 애양단(愛陽壇)이란 글자가 보인다. 햇빛을 사랑하는 단이란 뜻이다. 험한 세상 찬바람 맞으며 살아온 속세의 사람들에게 어머니 품같은 포근한 쉼터이자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겠다는 뜻이 서려있다. 그 앞에 서니 온 몸을 꽉 안아주시던 그 따뜻한 어머니 품 같은 정겨움과 푸근함이 느껴져 발걸음을 뗄 수 없다.


애양단을 지나자 오곡문(五曲門)이 나온다. 예전에는 담장 밖으로 오가는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2 소쇄원 담장 애양단과 오곡문이 있었던 자리. 오곡문 아래로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

오곡문 아래로 개울물이 흐른다. 하서는 이 개울을 건너야 완전한 천국에 이른다고 했다. 마치 불교에서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물을 건너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서는 ‘천국은 하늘 위에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욕심에 눈먼 사람들이 훼손하지 않으면 그대로 천국’이라고 했다. 그런 사상을 구현해놓은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언덕을 깎지도 인공적으로 물길을 내지도 않았다. 태고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4 비 갠 하늘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볼 수 있는 제월당.

언덕 아래로 물이 흐르고 하늘엔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소리 청량하다. 비 갠 하늘에 밝은 달이 떠오른다. 이런 정취를 어디서 감상할 것인가. 바로 제월당(霽月堂)이다. 비갠(霽) 하늘에 떠오르는 달 같은 집이자, 그 달을 바라보는 집이기도 하다. 제월당은 주인이 머물고 있는 집이다. 제월당에 이르러 비로소 천국의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하서는 천국의 모습을 마흔 여덟 수의 시로 묘사했다. 그 설명은 제월당의 현판으로 둘러쳐져 있다. 첫 번째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쇄원 안에 있는 모든 경치는(瀟灑園中景)하늘이 빚어 만든 천국의 모습(渾成瀟灑亭)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흐뭇해지네(擡眸輸颯爽)천상의 소리 아롱아롱 귀에 들리고(側耳聽瓏玲)


이어 천국의 주인이 손님을 안내하는 곳은 개울가에 있는 광풍각(光風閣)이다. 맑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집이고, 그런 바람을 맞이하는 집이기도 하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은 북송시대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의 인품을 “맑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고, 비 갠 뒤에 떠오르는 밝은 달 같다”고 표현한 데서 따온 말이다.


제월당에서 보면 광풍각이 보인다. 제월당과 광풍각은 통해 있다. 그러나 제월당과 광풍각 사이는 서로 통해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나머지를 담으로 막아 놓았다. 담은 보이지 않도록 가리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통해 있어도 가리고 싶은 부분이 있다. 때로는 웃옷을 벗어 던진 채 바람을 쐬고 싶기도 하고, 벌러덩 드러누운 채 잠을 청해보고도 싶다. 제월당의 주인은 그런 손님의 마음까지 헤아린 것이다. 그래서 낮은 담을 쳤다. 광풍각에는 사방에 마루가 있고 속에 온돌방이 있다. 마루에 앉아 있다가 추워지면 언제라도 들어와 몸을 데우라는 뜻이다.


광풍각에까지 오면 천국 체험이 무르익는다. 소쇄원에서의 천국 체험은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는 체험이다. 천국을 체험하고 난 뒤에 들어온 길을 따라 소쇄원을 나오는 것은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것일까. 하서는 그 길은 속세가 아니라 천국이라고 했다. 그땐 이미 속세가 천국으로 바뀌어있기 때문이다. 하서의 꿈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기동성균관대 동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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