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끓는 대구의 이웃사랑…'1억2100여만원' 찍힌 수표 전달하고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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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3일 오후 5시쯤 대구시 동구 신천동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6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잠깐 밑에 내리와가 돈 좀 받아 가이소~." 전화를 받은 김미정(39) 모금사업팀장은 옆에 있던 김찬희(34) 홍보담당에게 "또 왔네예"라고 반가워했다.

올해로 꼭 5년째.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하는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어김없이 또 나타났다. 김 팀장이 사무실 앞에 나가자 승용차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그는 목례를 한 뒤 외투 안주머니에서 흰색 편지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1억2100여만원이 찍힌 수표와 '정부가 못 찾아가는 소외된 이웃을 도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적힌 쪽지(사진)가 들어있었다. 그는 김 팀장에게 "확인해보이소. 안에 쪽지가 있으니 읽어보고 소외된 이웃에게 잘 좀 써 주이소."라고 했다. 감사의 인사라도 전하고 싶다며 누구신지 물었지만 그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손사래를 치며 가버렸다. 5년째 이어진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기부는 2012년 1월 30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공동모금회 사무실을 찾아 1억원짜리 수표를 건넸고 그해 12월 26일에도 1억2300만원을 전달했다. 직원이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남몰래 돕고 싶다"며 거절했다. 이후 매년 연말 1억2000여만원씩 기부했다. 이번까지 합치면 전체 금액이 7억2000만원에 이른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대구에서 한 가족 3대(代) 9명이 각 1억원씩 모두 9억원을 기부, 동시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기부할 경우 회원이 된다. 가족 9명이 동시 가입한 것은 처음이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이 가족은 기부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익명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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