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폐지하고 남북평화협력부 만들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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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8 면

일러스트 박용석 parkys@joongang.co.kr

‘독일통일=아데나워 서방정책+브란트 동방정책+콜 통일외교 및 동서독 통일협상+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동유럽 혁명’. 오랫동안 독일통일 과정을 면밀히 연구해온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가 최근 펴낸 『베를린장벽의 서사:독일통일을 다시 본다』(창비)에서 도출해낸 수학적 등식이다. 김 대기자는 독일통일의 주역이자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방정책의 기획자 에곤 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원로 언론인 테오 좀머를 직접 만나 그들의 육성을 통해 생생한 증언을 청취했다. 동독 출신으로 독일통일 직전 시민운동에 동참했던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는 서면 인터뷰로 그의 통일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베를린장벽의 서사』는 독일통일의 근원을 1949년 서독 정부 수립 이후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의 서방정책(West Politik)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 과정의 연계성을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 1958년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김 대기자는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현역 언론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날카로운 칼럼과 주목받는 인터뷰 기사를 집필하고 있다. 지난 15일 통일문제 대가인 김 대기자를 만나 독일통일 과정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과 우리의 과제를 들어보았다.

-『베를린장벽의 서사』를 펴낸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미국·유럽 어디에서도 독일통일의 전 과정을 다 보여주는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아데나워 총리의 서방정책이 없었더라면 독일통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방정책이 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부전선’에서 이상이 없어야 ‘동부전선’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간과한 것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다.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대외정책 부문은 신사고 외교라고 한다. 고르바초프는 신사고 외교를 하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동유럽 문제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이렇게 선언했다. 그 결과 폴란드와 체코에서의 시민혁명이 가능했고 이런 개혁과 시민혁명 바람이 동독으로 불어 들어가 동독의 시민혁명을 일으켜 독일통일이 이루어졌다. 이런 전 과정을 유기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통일 과정에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책을 쓰고 싶었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가우크 독일 대통령, 원로 언론인 테오 좀머 등 독일 통일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했는데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적인 답변은. “동방정책의 설계 및 추진자인 에곤 바가 우리 가슴에 와닿는 말을 많이 남겼다. ‘통일은 생각하되 말하지 말라.’ 큰 담론보다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바는 또 ‘통일은 모스크바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소련이 독일통일의 키를 잡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제로 동방정책을 완수해냈다. 그리고 인터뷰한 주요 지도자들의 저변에 흐르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통일보다는 데탕트·평화·협력·화해를 강조했다. 통일이라는 건 이런 것들이 무르익고 축적되면 그 뒤에 찾아온다는 생각을 했다.”


-아데나워, 브란트, 콜 같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정치지도자들이 전후 독일의 부흥과 동·서독 통일을 이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에도 이런 정치지도자들의 출현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중임이 금지돼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선거에서 이기면 얼마든지 장기집권 할 수 있다. 정권이 다른 당으로 넘어가도 통일의 프로세스·비전·전략은 그대로 계승됐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대체로 생각부터 왜소하고 사고의 지평이 좁은 편이다.”


-아데나워 정부의 서방정책 없이는 브란트 정부의 동방정책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신선한 것 같다. “전후 독일로서는 프랑스와 화해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마침 아데나워라는 카리스마 있는 거물정치인이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샤를 드골이란 걸출한 정치인이 나타났다. 드골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했다. ‘독일과 화해하지 않으면 유럽은 앵글로색슨 민족에게 지배된다’. 둘의 생각이 잘 맞아떨어져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이 성공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결국 우리도 멀리 통일을 준비하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먼저 일본과 충분히 화해해야 한다. 미국과 탄탄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필요하다. 물론 러시아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외교가 중요한 것 같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에 필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에곤 바나 한스디트리히 겐셔와 같은 외교의 달인 없이는 평화정책도 통일정책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외교전략가가 없었다. 대통령을 충분히 설득해 자기가 생각하는 정책을 수행할 만한 능력 있는 큰 외교관들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이건 참 불행한 일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로 상징되는 동방정책은 결국 평화정책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이 동방정책에서 가장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동방정책은 데탕트(detente·긴장완화) 정책이었다. 우선 동독과 동유럽과의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즉, 합의에 의해서 공존해나가는 것이 이루어진 다음 데탕트로 가고 래프로쉬망(rapprochement·화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시도 통일이란 게 머리에서 떠난 적은 없다. 다만 말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바는 1963년 바이에른주의 투칭에서 유명한 연설을 한다. 그것이 바로 ‘접촉을 통한 변화’였다. 그때 변화라는 건 동독만 변화시키자는 게 아니라 우리 서독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서로 진화하자는 이야기다. 여기서 변화는 작은 실천을 쌓아나가는 거다.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왕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거대담론이 아니라 작은 실천부터 해나가야 한다.”


-한국에는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려 통일하자는 소위 붕괴론자들이 다수 있는 것 같다. “붕괴론이 본격적으로 나온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8월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도 소련 해체를 보고 북한 붕괴를 기대했다. 최근 들어 다시 북한 붕괴론이 자주 거론된다. 북한에 강력한 제재로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런데 붕괴론은 환상이다. 어떤 정부 정권도 외부의 압력으로 붕괴된 적이 없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방관하진 못할 것이다. 평양의 정통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북한의 농민, 빈곤층은 전혀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만 평양의 엘리트들은 사치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정권이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환상에 불과한 북한 붕괴론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이라는 건 실패하기 마련이다. 성공할 수가 없다.”


-독일통일은 동방정책+페레스트로이카+동유럽 혁명으로 이뤄졌다는 통일 공식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통일 공식은. “‘한반도 통일=주변 4강과의 완전한 협력+남북 간의 완전한 평화협력’이다. 독일처럼 전쟁 가해자로서의 화해 정책이나 동유럽 혁명 같은 요소는 없어 등식은 간단한 편이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


-콜 총리는 바둑으로 치면 ‘초읽기’에 몰린 고르바초프 정권이 붕괴하기 전에 초인적인 외교로 절체절명의 통일 기회를 살렸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우리도 준비를 철저히 해 단 한 번의 기회가 온다면 살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고르바초프는 크렘린 보수파로부터 엄청난 위협과 압박을 받고 있었다. 소련 경제도 거의 파탄 지경에 있었다. 콜은 고르바초프의 이런 처지를 역으로 잘 파고들어 독일통일과 관련된 결정적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간을 끌다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기라도 했으면 독일통일은 상당 기간 지연됐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었을 거다. 역사적인 과업은 유토피아에서 시작돼 현실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도 몽상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와 전략가가 필요하다. 한국에도 분명 그런 인재들이 있다.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회전문 인사를 계속 한다면 그런 기회를 우리는 살리지 못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 없고 발휘해도 통하지도 않는 풍토에선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대통령은 널리 인재를 구해서 그 자리에 앉혀야 한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 독일과 한국의 상황은 여러 가지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독일통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말 많은 것 같다. 특별히 한 가지를 추천한다면. “첫째는 초당파적 통일정책이다. 적어도 북한 문제에 대해선 초당적으로 여야가 협력해야 한다. 정권만 바뀌면 모든 걸 뒤집어 놔서는 안 된다.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실무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열어줘야 된다는 점이다. 사고의 회로를 막아버리면 안 된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메시지는 긴 평화의 과정 속에서 성취할 수 있었다는 거다. 통일정책으론 통일이 안 된다. 평화화해정책으로 통일이 되는 거다. 서독이 단독대표성을 고집하는 전독부(全獨部)를 폐지하고 동독의 존재를 인정한 내독부(內獨部)를 만든 것처럼 우리도 통일부를 폐지하고 남북평화협력관계부를 신설해야 한다.”


-개성공단 폐쇄는 매우 안타까운 조치라고 썼다. “남북협력을 위한 가장 유용한 통로가 막혀버렸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적어도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그걸 열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근데 명분 찾기가 어려워졌다. 북한은 5월 당대회가 끝나면 대화 모드로 전환할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로 그랬지만 우리 정부는 진정성이 없다며 문을 닫았다. 개성공단을 재개해도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들어가려고 하겠나. 그렇지만 개성공단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열어야 한다.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남침 회랑인 개성공단을 남북협력의 상징지대로 다시 부활시켜야 남북 접촉이 재개될 수 있다.”


-북한의 핵 포기 선언이 남북 화해의 전제조건이라면 지금과 같은 고착 상태가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서울도 알고 워싱턴도 안다. 도쿄도 중국도 모스크바도 다 안다. 미국은 비확산으로 가는 것 같다. 우리는 일단 북핵 동결을 목표로 해야 한다. 비핵화에만 매달리면 북한에 오히려 시간만 더 벌어줘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개발,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하면 대가가 더 비싸진다. 그 이전에 대화하고 모라토리엄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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