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소설『비명을 찾아서』 김원우<소설가>|가상의 역사설정 오늘을 재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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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상해 임시정부 시절 때 김구선생은 자주 『이성계 때문에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됐다』고 한탄했다 한다.
그의 말대로 요동반도 정벌이 계획대로 실현되었다면 우리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처럼 달라진 우리 역사를 전적으로 위화도회군 때문이었다고 단죄하는 것도 말이 안됨은 물론이다. 현실도피적인 발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신진 소설가 복거일씨의 『비명을 찾아서』도 그런 대체력사에의 회원이 모티브가 된 길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 기발한 착상은 이렇다. 이등박문이 안중근의사의 암살기도에 부상만 당하고 살아난다. 일본 근대정치사에서 탁월한 한 재능이었다고 평가받는 이등박문의, 용의주도한 통치능력과 정치적 식견에 세뇌되어 조선인들은 누구나 일본제국주의의 「충량한 황국신민」이 된다. 한글이 없어지고 반도의 시인들은 당연히 일본글로 시를 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부제인『경성, 쇼우와 62년』이 말하는 대로 1987년의 서울 모습은 철저하게 일본화 되어 있다. 피압박민족으로서 다소의 불이익은 어쩔수 없이 감내해야 하지만 서울 시민들은 깡그리 말살된 우리 역사를 되찾을 기력도 잃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잘 조정되고 관리되는 꼭둑각시로 영일없이 살아간다.
그러니까 『비명을 찾아서』는 머리 좋은 한 소설가가 아기자기하게 조립한 의사현실 속을 살아가는 조선인의 신음 소리이며, 한 시인이 없어져 버린 우리말을 찾아가는 고난의 기록이다.
요즘들어 우리 소설은 자꾸 거칠어지고 있다. 과장투성이의 부실한 언어로 드라머만 쫓는 경향이 여실한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삵의 내용은 우리 현실처럼 비정상적으로 다사다난해져 버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섬세한 감정도 없는 돌멩이가 되고, 쓸데없이 길어지며, 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새미가 없어지고 있다. 이런 경향과 비교해볼 때 『비명을 찾아서』는 한 시인의 삶의 세목들이 실감나는 단정한 문체로 짜여져 있다.
소설이란 양식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자성」이라면 우리의 상투적인 삶의 편린들에 대해 자세할 수 밖에 없고, 자세할 수록 좋은 소설이다.
이런 우의소설은 그 결말이 워낙 뻔해서 진부하며, 지나치게 일본적인 또는 일본소설적인 정서로 점철되어 있는 단조로운 상황묘사도 생리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구속된 시인의 아내를 겁탈하는 일본 헌병의 정형화는 이 소설의 작은 흠이 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손수 지어서 붙인 제사들이 이 소설의 다성음을 한층 강화시켜주고 있고, 우리 현실에 빗댄 여러 비판은 「고급스런 통속화」에 성공한 한 예가 되기에 충분하다.
내가 오독한 것이 아니라면 『비명을 찾아서』는 우여곡절의 사건들만 줄기차게 만들어가는 나쁜 사실주의 소설에 대한 한 반발로 씌어졌을 것이다. 보통명사화 되어 있는 한용운과그의 시를 인용하는 것이 그렇고, 주인공이 일본인 여사무원과 끝끝내 단아한 연애로 일관하는 의도성이 그렇다. 그런 뜻에서 이 소설은 낭만주의 소설의 좋은 전범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현실도피」는 낭만주의의 첫 번째 전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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