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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없는 세상’ 오바마 8년 노력 물거품되나…미·러, 핵무기 경쟁 재연 우려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핵 능력 강화 발언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상’을 180도 뒤집었다. '오바마 것은 다 바꿔(All But Obama·ABO)'를 내세우는 트럼프의 제 1탄이 '핵 확장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바마는 2009년 1월 취임하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선언하면서 8년 재임 동안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오바마는 2010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에 서명했다. 1991년 미ㆍ러가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대체할 후속 협정으로, 2018년까지 핵탄두를 각각 1500~1675개 수준으로 줄인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미 New START에 어깃장을 놓으며 미ㆍ러가 냉전 시대와 같은 핵무기 경쟁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푸틴은 지난 10월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적 행동으로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위협이 생기고 있다”며 미국과 체결한 무기급 플루토늄 관리 및 폐기 협정(PMDA)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달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밀어붙이는 유럽 미사일방어(MD)망 구축 계획에 반발하며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들을 유럽과 가까운 러시아 서부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리아 내전과 나토의 동유럽 영향력 확대 등으로 이미 미ㆍ러는 부딪히고 있다. 트럼프ㆍ푸틴 시대에 신 군비 경쟁이 시작됐다”며 “이는 중국을 자극하고 북한의 핵 개발을 부추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언론은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트위터 글을 놓고 진의 파악에 분주하다. 특히 트럼프가 핵 능력 강화(strengthen), 확장(expand)이란 단어를 쓴 데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 정상들은 핵무기 정책을 언급할 때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한다”며 “통상 핵 능력에 대해 현대화(modernization)한다고 쓰지, 강화한다는 용어는 잘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강화와 확장이란 단어가 새 핵 탄두를 개발하거나 숫자를 늘리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과거 냉전 시대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자주 구사했던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을 트럼프가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치광이 이론'이란 상대에게 미치광이처럼 비침으로써 공포를 유발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략이다. 백악관 공보국장 내정자인 제이슨 밀러는 논란이 번지자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은 핵 확산 위협에 대한 언급으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과 불안정한 불량 정권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진화에 나섰다.

스웨덴 조사기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올해 1월 기준으로 추산한 핵무기 실태에 따르면 전 세계 핵탄두는 1만5395개다. 러시아가 7290개로 가장 많고 미국이 7000개다. 양국의 핵탄두가 전체의 93%를 차지한다. 이밖에 핵탄두 보유 국가로는 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인도ㆍ파키스탄ㆍ이스라엘ㆍ북한 등이다. 중국 260개, 인도 100∼120개, 파키스탄 110∼130개, 이스라엘 80개, 북한은 10개를 가진 것으로 추정됐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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