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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거꾸로 흐르는 폭포가 가능할까, 리움 ‘올라퍼 엘리아슨’전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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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희진

시험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밝혀줄 빛을 찾아서

지난 9일, 숨막히던 5일간의 기말고사가 끝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기말고사 중에는 “시험만 끝나면 밑도 끝도 없이 놀아야지”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이 끝나니 급격히 무기력해지면서 이불과 한 몸이 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누워만 있는 것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그 동안 시험준비로 미뤄왔던 문화생활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피폐해진 나의 마음을 밝혀줄 것임에 틀림없었다.

시체놀이의 토요일을 지나 일요일이 왔다. 리움미술관의 올라퍼 엘리아슨 전에 가기로 결심했다.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작가로 현대미술계에서 주목 받는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과 움직임, 거울을 이용한 착시효과, 기계로 만들어진 유사 자연 현상, 다양한 시각 실험 등을 작품제작에 이용한다는데. 작가에 대한 설명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기계로 자연현상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며 어떻게 관람객들의 시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리움미술관까지 가는 길은 집에서 1시간 30분, 지하철 환승에 끝없는 오르막길이 기다리는 강행군이었다. 리움미술관에 거의 다 왔다는 반가운 표식을 발견하자 어찌나 흥분되던지 급히 카메라를 켜고 그 순간을 담았다.

드디어 리움미술관에 도착했다! 전시를 관람하기도 전에 벌써 외관부터 마음에 들었다. 자연물과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이태원은 정말 복잡했지만 리움미술관에 오니 마치 제주도에 온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기념품 상점에서 10분 동안 이것저것 구경한 뒤 바로 왼쪽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올라퍼 엘리아슨 전의 티켓을 구매했다. ‘최소한 5000원은 넘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청소년 할인을 받아 4000원에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올라퍼 엘리아슨 전이 전시된 곳은 고미술관인 MUSEUM 1과 현대미술관인 MUSEUM 2를 지나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 위치했는데 전시장까지 가는 내리막길의 천장에 선풍기가 매달려 불규칙하게 공중을 휘젓고 있었다.

'저 선풍기는 왜 저기 매달려있지?'

의아하던 차에 팜플렛을 읽어보니 허무하게도 그 정신 없던 선풍기는 이 전시의 첫 번째 작품, '환풍기'였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라고 생각했던 건 알고 보니 환풍기였고 스스로 내는 바람에 의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거라니 신기했다. 환풍기를 매달아 놓은 줄이 환풍기의 동선을 조정한다고 생각한 내 예상이 빗나갔다. 전시 도입부터 현대미술의 기운이 느껴졌다.

'환풍기'를 지나치니 이번 전시의 포스터가 아주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올라퍼 엘리아슨의 가능성이 담긴 작품들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본격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마주한 작품은 두 개의 나선이 회전하는 형상의 '강한 나선'과 '부드러운 나선'이었다. 포스터에도 등장한 터라 처음 마주하지만 친숙함이 느껴졌다. 얇은 철관이 돌돌 말려 중심이 같은 두 개의 나선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형성된다. 나선의 바깥쪽은 검은색으로, 안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회전하는 모터에 매달려 있다. 두 나선은 회전하면서 물결모양 두 개가 끊임없이 서로를 스쳐 미끄러지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 내는데, 하나는 기둥 안에서 항상 올라가고 다른 하나는 끝없이 내려간다.

처음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 회오리감자가 떠올랐다. 빙글빙글 타고 내려가는 미끄럼틀처럼 나선형으로 꼬치에 끼워진 회오리 감자 말이다! 그리고 올림픽 때 보았던 손연재 선수의 리듬체조 중 리본 종목이 연상되기도 했다. 두 나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안쪽의 나선이 올라가서 다시 바깥쪽의 나선이 되어 내려가는, 끝없이 순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끼 벽'을 볼 수 있다. 작가가 북유럽(아일랜드계 덴마크)사람이라 그런지 북유럽 지역에서 자라나는 순록 이끼를 철망에 엮은 것이라고 한다. 순록 이끼는 종종 건축 모형에 사용된다. 건조할수록 수축되면서 색이 바래지만 역으로 수분을 먹으면 다시 팽창하고 색이 변하면서 코를 찌르는 특유의 냄새를 내뿜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시장은 건조한 편이라서 아쉽게도 그 냄새를 직접 맡아볼 수는 없었다. 나중에 북유럽으로 여행을 가 습한 순록 이끼의 냄새를 맡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낯선 재질로 만들어진 벽’인 줄로만 알았는데 작품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끼인줄 알았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끼는 주로 검은색이 도는 초록색이라 연한 황토색의 이끼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연한 황토색의 이끼는 뭔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본 영화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배경이 연상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른쪽 통로로 들어가니 '무제(돌 바닥)'라는 작품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높이에 차이가 있는 듯 계단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는 네 종류의 화산암(조립현무암, 유문암, 청색 현무암, 기름칠 된 흑색 현무암)을 육각형과 평행사변형 모양으로 깎아 맞물리게 조립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입체적으로 보이는 이 바닥타일은 관람객이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데 정말 그랬다. 네 가지 종류의 암석은 어디에 걸음을 내딛느냐에 따라 촉감이 확연히 달라서 걸음 걸음 발에 닿는 느낌이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뒤집힌 폭포'다. 물이 얕게 채워진 큰 수조 안에 엉성해 보이는 비계(공사용 임시 가설물)가 네 층으로 세워져 있다. 비계는 각 층에 하나씩, 총 네 개의 직사각형 물통을 받치고 있고 펌프와 호스로 구성된 장치는 중력의 흐름을 거스르며 한 물통에서 다른 물통으로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데 이 때 물은 물통과 큰 수조뿐 아니라 주변까지도 적시며 사방으로 튄다. (실제로 2m 정도의 거리에서 감상했는데 물이 조금 튀었다.)

물줄기 소리는 전기 펌프의 윙윙댐 사이로 분명하게 들렸고, 공기는 조금 습했다. 보통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뒤집힌 폭포'는 오히려 마음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서일까? 결국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이차방정식의 그래프를 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뭔가 가여워지기도 했다.

작품명이 '뒤집힌 폭포'이니 저 작품을 뒤집으면 어떨까 하고 반대로 생각해 보니 진짜 폭포의 형상이 그려졌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여러 바위를 타고 내려가면서 마지막엔 호수의 일부가 되는 모습. 내 마음속에 폭포수가 내린 듯 '뒤집힌 폭포'를 볼 때와는 다른 시원함이 느껴졌다. 작가는 불안정하게 비계를 설치하여 자연을 역행하는 것의 불안정함과 불완전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나머지 작품들을 감상하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한번 더 감상한 뒤 리움미술관을 나왔다. 올라퍼 엘리아슨이 예술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나에게 전해준 무한한 가능성만큼이나 머릿속이 복잡했고 마음은 편안했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서 작가는 어떤 의도로 각각의 작품을 작업하게 되었는지, 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여러 기법과 재료를 통해 가능성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태원역까지 한참을 걸었다. 폭포가 거꾸로 솟듯, 안 된다고 생각한 것들이 가능해지는 순간은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글·사진=황희진(서울국제고 1)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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