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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잠 깨웠다 ‘한강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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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새뚝이 2016 ② 문화

“아주 행복하다. 이 기쁨을 (지금 이 순간) 깊이 잠들어 있을 한국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수상
영미권에 한국 소설 관심 일으켜

지난 5월 16일(현지시간) 극단적인 육식 거부를 다룬 연작 장편 『채식주의자』로 영국 런던에서 세계적인 지명도의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46·사진)의 당시 수상 소감이다. 깜짝 수상으로 그가 잠 깨운 건 가족과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항상 문학 주변국 신세였던 한국문학 전체의 잠을 깨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상의 감동과 파장이 컸다. “IMF 직후 박세리의 US오픈 골프 우승에 비견되는 쾌거”(문학평론가 유종호)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수상은 곧장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지금까지 65만 부, 1980년 광주를 다룬 또 다른 장편 『소년이 온다』는 10만 부, 수상 직후인 5월 말 출간한 『흰』은 7만 부가 팔렸다. 대부분 상 받은 이후 팔린 것들이다. 문학사적으로나, 대중적 인기에서나 올해 한국문학의 주연은 단연 한강이었다.

이제는 작가의 부인할 수 없는 대표작이 됐지만 『채식주의자』가 한씨에게 마냥 기꺼웠던 건 아니다. 그는 수상작 발표 전인 5월 초 본지 인터뷰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세 편 연작의 두 번째 중편인 ‘몽고반점’의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는 독자들이 그동안 있었다는 얘기였다. 주인공 여성의 내적인 진실을 형부가 오해하는 소설 속 상황을 선정적으로 받아들여 탐미주의적 작품으로 여긴다는 지적이었다.

2007년 출간돼 잊혀졌던 소설은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28)의 빼어난 번역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심상찮은 조짐은 2월부터 있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가디언 등 영어권 유력지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영어로 번역된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비중 있게 다뤘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라는 평이 나왔다.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선정위원회의 평은 “서정적이면서도 가슴을 찢는 스타일로 극단적 채식주의의 충격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강 이후’를 주목한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와 달리 자기 발로 찾아와 한국 소설을 출간하겠다고 하는 외국 출판인이 생겼다”고 했다.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영화·K팝에서 시작한 한류가 문학으로 옮아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출판사 창비의 강영부 문학부장은 “다른 한국 작가들도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한강은 수상 후 귀국 인터뷰에서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들어 소설을 다시 쓰는 게 소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 말대로 서울예대 교수직도 1년간 휴직한 채 칩거 상태다. 새 소설집은 내년이나 후년께 나올 예정이다.

새뚝이

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이나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또는 단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연말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새뚝이로 선정해왔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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