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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손바닥으로 진실 가리는 울산 군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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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은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은경 내셔널부 기자

최은경
내셔널부 기자

지난해 5월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최모(당시 23세)씨가 주변에 있던 훈련병들에게 실탄을 난사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고한 예비군 2명도 같이 숨졌다. 총구를 앞쪽으로 고정하는 안전고리를 당시 훈련조교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통제관과 조교들이 무장하지 않아 최씨를 제압할 수 없었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당시 군부대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13일 울산 군부대의 예비군 훈련장 폭발사고도 전형적인 안전불감증 사례다. 당시 사고로 현역 군인 10명이 다쳤다. 탄약관 이모(30) 중사는 비정상적으로 많이 남은 폭음통을 불법적으로 소모하려 했다. 수류탄 대용으로 쓰는 폭음통 안전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해야 할 탄약관이 직접적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 상관들의 질책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고 당일 오후 5시쯤 사고 현장 바닥에 화약을 버렸다는 탄약관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군부대 측은 당일 언론 브리핑에서 “사고 현장에 어떤 인화성 물질도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울산 군부대의 예비군 훈련장 폭발사고로 크게 다친 이모(21) 일병이 13일 서울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울산 군부대의 예비군 훈련장 폭발사고로 크게 다친 이모(21) 일병이 13일 서울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오히려 군부대 측은 “(탄약관이) 폭음통에 대한 지식이 없고, 보직이 짧아서”라며 이 중사를 변호하기 급급했다. 이 중사가 1600개나 되는 폭음통을 임의로 분해해 화약을 병사와 예비군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 버렸는데도 군 관계자는 “(이 중사가) 잘하려고 한 일”이라고 감쌌다. 탄약관은 현황 보고서에 올해 100여 회 예비군 훈련에서 폭음통 1842개를 모두 사용했다고 허위로 기재하기도 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행위가 군 내부에서는 폭음통을 잘 처리하려 한 노력으로 둔갑한 셈이다.

잘못은 더 있다. 이 부대 대대장은 탄약관이 남은 폭음통을 소모하겠다고 했을 때 규정대로 다음달로 넘겨 사용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비 오는 날 여러 번에 걸쳐 소모하라”고 규정을 어길 구체적 방법까지 알려줬다. 이런 전후 사정을 모두 인지하고도 부대 작전과장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탄약관의 요청을 받은 소대장은 병사들에게 폭음통을 해체하도록 지시했다. 한 발만 터져도 손가락이 절단된다는 폭음통을 하루 종일 1600개나 분해하도록 해 사고를 초래했다.

군부대 측은 “하필 화약을 버린 12월 1일 이후 사고 당일까지 건조주의보였다”며 사고 책임을 오히려 건조한 날씨 탓으로 돌렸다.

손바닥으로 진실을 가릴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군부대에 산재한 안전사고 위험 요인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게 순서 아닐까.

최은경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