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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강한 남자’ 좋아하는 인간, 진화하던 성기에서 뼈가 사라진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길이가 다양한 포유류 생식기의 뼈(penis bone) [Science]

인체를 X선 촬영하면 성기에 뼈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Independent]
다양한 포유류 성기의 뼈(baculum) [Independent]
인간의 뼈 [BT.com]
박물관에 전시된 포유류의 뼈 [The Economist]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생식기에 뼈가 있다. 무려 60cm에 달하는 바다코끼리의 '대물' 생식기에도 뼈가 있다.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도 1cm 안팎의 아기자기한 뼈가 ‘물건’을 든든하게 곧추세운다. 왜 생식기에 뼈가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뼈가 있는 생식기가 진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보다 잘 번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현상을 ‘진화적 적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생식기는 이런 ‘진화적 적응’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인간 생식기에는 뼈가 없어서다.

인간은 단단하고 큰 생식기를 만들겠다며 정력제나 보양식을 먹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생식기는 스펀지 같은 해면체 조직이 성적 자극을 받을 때만 단단해지는 형태로 진화했다. 왜 인간의 생식기는 번식에 유리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화한 것일까?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학자들은 대부분의 영장류 수컷이 생식기에 뼈를 갖고 있지만, 인간은 예외라는 점에 주목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14일(현지 시간) 이 계통분류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일단 종(species) 별로 각각 선조들의 음경 뼈의 분포를 조사해, 포유류 음경의 뼈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연구했다.

조사 결과, 포유류 음경의 뼈가 처음 진화를 시작한 것은 약 1억4500만 년 전이었다. 태반이 있는 포유류(유태반류·Placental Mammals)와 태반이 없는 포유류(무태반류·Non-placental Mammels)로 종이 분화하던 시점이다. 연구진은 당시 일반적으로 영장류와 육식동물은 대부분 음경에 뼈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처럼 생식기에 뼈가 없는 포유류도 과거에는 뼈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포유류는 왜 생식기에 뼈가 필요했을까. 과학자들이 세운 가설은 두 가지다. 첫째, 고양이 등 어떤 종은 암컷이 짝을 만나기 전까지 난자를 내보내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이 사실에 착안해 과학자들은 음경의 뼈가 여성을 자극해 배란을 유발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른바 ‘배란자극설’이다.

두 번째 가설은 ‘질마찰가설’이다. 수컷의 성기가 암컷의 성기에 삽입될 때 음경뼈가 일종의 ‘구둣주걱’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다. 즉, 발을 구두에 넣을 때 구둣주걱을 이용하면 부드럽게 발을 끼울 수 있는 것처럼, 남성 성기를 여성 성기에 삽입하는 과정에서 음경의 뼈가 마찰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삽입되도록 돕는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이 가설은 궁극적으로 음경 뼈가 성교 시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연장한다고 본다.

또 과학자들은 성기의 뼈가 이른바 삽입하는 동안 여성 성기 입구를 막는 일종의 ‘코르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추론했다. 수컷이 삽입시간을 최대한 연장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수컷이 충분히 사정하기 전에 암컷이 다른 수컷과 짝짓기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암컷이 슬그머니 수컷을 떠나는 현상을 방지하려는 의도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영장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서 음경 뼈 존재 여부와 성교에서 삽입 시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음경 뼈가 있는 포유류는 그렇지 않은 포유류보다 삽입 시간이 평균 3분 길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볼 때 ‘삽입 시간이 긴 영장류 수컷은 상대적으로 더 긴 음경 뼈를 보유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게 연구진 판단이다. 이들은 또 섹스하기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이 필요한 종일수록 더 긴 음경 뼈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는 섹스를 할 때 성기에 뼈가 있으면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성적 만족도를 높이는 장시간 섹스를 위해서도 성기의 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번식에 유리한 뼈가 인간에게는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의 결론을 뒤집어보면 그 이유를 추론할 수 있다. 일단 인간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 성교 시간이 길지 않다.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들어간 이후 여성의 질에 사정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분이다. 이는 다른 포유류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굳이 음경의 뼈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첫 번째 가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보노보’라 불리는 난쟁이 침팬지가 8mm에 불과한 자그마한 고추를 삽입한 뒤 사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인간보다 짧은 15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난쟁이 침팬지는 성기에 뼈가 있다.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 음경 뼈가 퇴화했다’는 가설을 부정하는 사례인 셈이다.

연구진이 내놓은 또 다른 가설은 섹스 경쟁과 관련이 있다. 다른 포유류와 달리, 인간은 (일반적으로) 섹스를 할 때 한 명의 여성이 한 번에 한 명의 남성과 섹스를 한다. 즉 ‘사정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은데 섹스 경쟁도 치열하지 않아서 성기의 뼈가 퇴화했다’는 게 현재까지 연구진의 유력한 가설이다.

사이언스는 “과학자들이 ‘음경의 뼈’로 연구 영역을 넓힌 것은 매우 근래에 벌어진 일”이라며, “이 가설이 명확한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종의 섹스 전략이 음경 뼈의 변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증명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틸다 브린든·키트 오피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박사의 이번 연구는 영국 학술지 '더 로얄 소사이어티 B(the Royal Society B)'에 게재됐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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