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조금 생각 없이 지내보는 건 어때 '스물' 김우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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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은 청소년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경계선에 놓인 나이다. 그래서 한없이 풋풋해야 할 스무 살 청춘의 이면에는 세상에 대한 불안과 방황, 서툴기에 가슴 아픈 사랑이 깃들어 있다. ‘스물’(3월 25일 개봉, 이병헌 감독)은 스무 살을 관통하는 세 청년의 우정과 사랑, 고뇌를 통해 넘어지고 깨져가며 어른이 돼가는 청춘의 의미를 되짚는다. 치호(김우빈), 경재(강하늘), 동우(이준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스무살 동갑내기 친구다. 여자 꼬시기에만 열중하며, 잉여 생활을 즐기던 치호는 뜻밖의 미래에 눈을 뜨고, 공부 밖에 모르던 경재는 동아리 선배에게 반해 지독한 가슴앓이를 한다. 불우한 환경 탓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꿈을 향해 가던 동우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실제로도 동갑내기인 세 배우는 유치하지만 찬란했던 스무 살 청춘의 파릇파릇한 모습을 봄 기운 가득한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영화를 찍으며 절친이 돼 “함께라면 ‘서른’도 찍고 싶다”는 그들을 만났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철근도 씹어먹는다는 스무 살인데, 치호의 인생 목표는 고작 ‘숨을 쉬는 것’이다. 대학 갈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으면서 부모님께 “등록금부터 먼저 달라”고 하질 않나. 클럽 죽돌이에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친구들과 모이기만 하면 섹스 이야기로 날을 지새운다. 다 자란 어른인 척하지만 사실 성인이 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귀여운 허세남. 이 못 말리는 철부지를 김우빈(26)이 찜했다. 전작 ‘친구2’(2013, 곽경택 감독)와 ‘기술자들’(2014, 김홍선 감독)에서 너무 일찍 철이 든 남자를 연기해서였을까. ‘스물’에서 제 나이를 찾은 김우빈은 그의 표현대로 ‘까불까불’ 날아다녔다. 방황이 스무 살의 특권임을 아는 이 훤칠한 배우가 작정하고 망가지니 관객은 즐거울 터. 그에게 묻는다.

-왜 치호였나.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치호·경재·동우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치호가 눈에 들어왔다. 치호를 형상화하자면 ‘미친 말’이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겠고, 뛰고 싶으면 뛰다가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자기 생각은 있는 것 같은데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상하게 그 감정을 알 것 같았고, 그 옷을 입고 싶었다.”

-배우 김우빈은 어린 시절부터 착실히 모델을 준비했고 빨리 길을 찾았다. 철부지 치호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

“다른 편이다. 나는 치호처럼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가만히 공상하고 영화 보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치호랑 닮은 정도를 묻는다면, 36%쯤 되는 것 같다(웃음). 친한 사람과 장난치면서 노는 모습은 비슷하다. 친구들은 예고편을 보더니 ‘딱 너 같다’고 하더라. 아마 내 안에 치호가 있을 거다. 진심이 없으면 연기가 나오지 않으니까.”

-진심이라.

“인물이 납득이 가지 않으면 연기를 못 하겠다. 치호를 이해하는 데 이병헌 감독님의 힘이 컸다. 방황이 스무살의 특권이라는 걸 느끼도록 현장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나는 새 작품을 찍을 때마다 실생활에서도 그 인물처럼 지내려고 노력한다. ‘친구2’에서 조직폭력배 성훈을 연기할 땐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시비를 걸면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했다. 지금같으면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라고 웃고 말텐데.”


-이 영화는 완전히 힘을 빼고 연기했을 것 같은데.

“힘 줄 겨를이 없었다. 까불 까불 날아다녔다. 우리에 갇혀 있던 미친 개가 밖으로 나와 날뛰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동료 배우와 스태프의 나이가 다 비슷해서 촬영장이 놀이터 같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 ‘서른’을 찍자는 말도 나왔다. 그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열심히 연기하자고(웃음).”

-치호는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마성의 남자’다.

“마성의 남자인지는 모르겠는데, 경재나 동우보다 확실히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를 꾀는 일이라면 자신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왜 주변에 그런 친구들 한두 명씩 있지 않나. 그들을 떠올리며 연기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사생활 얘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야한 농담도 어색하고.”

-‘스물’의 모든 인물은 저마다 방황하고 고난을 겪는다.

“경재의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사람들이 우리 보고 좋을 때다 그러는데, 애매하게 뭐가 없어.’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스무 살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이다. 이 영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사다.”

-그렇게 방황하던 치호도 결국 꿈을 찾게 된다.

“스물한 살이 되면 또 달라질지 모른다. 나는 치호가 조금 더 생각 없이 지냈으면 좋겠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감정도 느껴보고, 꿈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꿔보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김우빈을 키운 방황은 무엇인가.

“스무 살에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모델을 시작했는데, 한동안 돈을 못 받았다. 부모님께 손 벌리긴 싫어서 6개월간 친구랑 사우나에서 살았다. 돈이 없어서 이틀 동안 안 나오기도 하고. 낮에는 모델 일을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로 ‘우리 그만둘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음이 흔들릴까봐. 그만큼 일이 좋았던 거다.”


-당시의 경험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나.

“아무리 힘들어도 못 해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준다고 하지 않나.”

-지금은 배우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 아직 부족한 게 더 많다. 나는 내 연기를 못 본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볼 때마다 아쉬운 점이 생긴다. 50년 정도 더 하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김우빈은 어느새 ‘반항하는 청춘의 표상’이 됐다.

반항적인 얼굴 생김새 때문에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다. 이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대개 남자 배우들이 누아르나 액션을 하고 싶어하는데, 나는 가슴 따뜻한 휴먼 스토리에 더 눈이 간다. 고등학생 때 ‘행복을 찾아서’(2006,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를 보고 처음으로 영화를 보다 울었다. 윌 스미스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관객과 그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치호의 대사 중에 ‘남자는 직진’이란 말이 인상적이다. 이제 직진인가.

“남자들이 정말 많이 하는 말이다. 물론 나도 거꾸로 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택하진 않겠다. 욕심은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물결 따라 천천히 흘러가겠다.”

글=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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