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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장군, 인어 심청…헛헛한 세상에 판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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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tvN ‘도깨비’의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고려시대 용맹한 장군이었으나 어린 왕의 시기로 죽임을 당했다가 불사의 존재가 된 캐릭터다.

tvN ‘도깨비’의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고려시대 용맹한 장군이었으나 어린 왕의 시기로 죽임을 당했다가 불사의 존재가 된 캐릭터다.

전래설화로 낯익은 도깨비,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아니라 조선시대 문헌 『어우야담』에도 등장하는 인어가 현대판 판타지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시청자에게 성큼 다가왔다. 각각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와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얘기다. 두 드라마는 화려한 스타 캐스팅은 물론 스타 작가의 대본이란 점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도깨비’는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 ‘푸른 바다…’는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박지은 작가 신작이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서로 닮은 점도, 다른 점도 여럿이다.

인기작가 김은숙·박지은 동시 출격
설화적 캐릭터 등장 로맨스 공통점
“인간보다 인어·도깨비 믿고 싶은 것”

큰 공통점은 수백 년 세월을 잇는 판타지라는 것. 지난달 먼저 시작한 ‘푸른 바다…’는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사기꾼 청년 허준재(이민호 분)의 전사를 조선시대로 거슬러간다. 전생에 고을 현감이던 허준재가 인간들의 탐욕에 희생될뻔한 심청을 구해낸 인연이다. 이달초 시작한 ‘도깨비’의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본래 고려의 용맹한 장수다. 억울하게 죽은 뒤 도깨비, 즉 불사의 몸으로 깨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 불멸의 삶을 끝내려면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줄 ‘도깨비 신부’가 필요하다는 설정이다.

두 드라마의 인어와 도깨비 모두 고전, 특히 우리네 설화에서 출발해 작가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특징을 더한 캐릭터라는 점도 공통이다. 인어 심청은 인간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인간을 능가하는 괴력과 식탐, 또 현대문명과 인간사회에 대해 무지와 순수가 뒤섞인 시선을 지녔다. 이런 특징은 드라마의 중심축인 로맨스만 아니라 코믹한 장면이나 휴머니즘을 그리는 데도 바탕이 되곤 한다.

능력으로 따지면 도깨비 김신은 그 이상이다.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물론 가끔은 인간의 염원에 귀기울이고 때로는 인간의 죽음까지 좌우하는 신적인 존재다. 그렇다고 마냥 무섭지는 않다. 전래설화의 도깨비가 어리숙한 면이 있듯, 김신도 극중에서 근엄한 사극체 말투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다운 엉뚱한 언행을 오간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전지현 분)는 조선시대에는 ‘세화’, 현대에는 허준재(이민호 분)가 장난처럼 붙인 ‘심청’이 이름이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전지현 분)는 조선시대에는 ‘세화’, 현대에는 허준재(이민호 분)가 장난처럼 붙인 ‘심청’이 이름이다.

이처럼 판타지인 동시에 ‘츤데레’ 캐릭터, 즉 겉보기에 퉁명스럽지만 실은 배려심 많은 남성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 역시 두 드라마가 닮았다. ‘푸른 바다…’의 허준재가 현대에 처음 만난 심청을, ‘도깨비’의 김신이 여고생 지은탁(김고은 분)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다. 날 때부터 힘겹게 살아온 지은탁의 소원을 김신은 처음에는 마냥 귀찮아 하지만 귀신을 보고, 나아가 자기 가슴의 칼까지 보는 지은탁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과 나란히 김신의 관심도 달라진다.

두 드라마의 반응은 엇갈린다. ‘푸른 바다…’는 방송초부터 ‘별그대’의 외계인을 인어로 바꾼 아류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시청률도 기대에는 못 미친다. 화제작인만큼 첫회 16.4%(이하 닐슨코리아 조사, 전국 가구 기준)의 높은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이후 상승세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6회가 18.9%까지 올랐으나 지난주 7·8회 모두 17.4%에 그쳤다. 반면 ‘도깨비’는 첫회 6.9%(이하 전국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로 출발해 지난주 3·4회가 각각 12.7%와 12.3%를 기록, 2주만에 시청률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지금까지의 시청률 추이는 tvN 최고히트작인 ‘응답하라 1988’의 상승세를 앞지른다.

전문가들은 캐릭터 운용, 서사의 무게감 등에서 차이를 찾는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판타지는 비현실적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우화의 기능이 있다”며 “‘푸른 바다…’는 코미디가 강해지면서 무게감 있는 현실과의 연결이 약해지고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묻히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평론가 황미요조씨는 “심청의 엉뚱함이 ‘별그대’의 천송이과 겹치는데다 애어른 같은 반전을 보여준 도민준과 달리 허준재는 뛰어난 사기꾼이란 설정만 있을 뿐 캐릭터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고 평했다. ‘도깨비’는 마치 영화 같은 연출, 저승사자(이동욱 분)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 활용 등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큰 반향을 얻어온 두 스타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판타지 로맨스를 내놓은 것 자체는 여전히 주목거리다. 황미요조씨의 지적대로 “판타지는 ‘나인’‘W’‘오 나의 귀신님’등이 화제를 모으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주로 드라마 덕후들이 좋아하는 장르” 였기 때문이다. 평론가 공희정씨는 “지금은 인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사회”라며 “도깨비나 인어, 즉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돕는 열쇠나 의지처로 등장한다”고 또 다른 공통점을 꼽았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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