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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승리, 다신 이런 나라 만들어선 안 되겠다 각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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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우상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초로(初老)의 남성이 눈물을 글썽였다. 옆자리에 선 청년은 주먹을 쥔 오른손을 한껏 치켜들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젊은 부부는 무리 한 편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깨를 감싸 안고 춤을 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목소리가 전광판에서 흘러 나온 직후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인 9일 오후 4시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열린 여의도 집회 현장의 모습이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주최 측 추산 1만여 명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탄핵안 가결의 기쁨을 표현했다. 일부는 감정이 복받치는 듯 눈물을 연신 흘리기도 했다. 시민 양희경(55·여)씨는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다시는 이런 나라를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숙명을 느낀다”면서 울먹였다. 그는 또 “국가가 안정될 수 있는 자리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은퇴자 이석(69)씨 역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국민의 힘이, 국민의 촛불이 (탄핵안 가결을) 이뤄냈다. 국민이 깨어 있다는 걸 느꼈기에 우리나라의 앞날이 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두헌(31)씨는 “오늘 탄핵안 가결은 민심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고, 국민의 승리”라면서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의식이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직장인 김형진(33)씨는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이뤄진 것”이라며 “앞으로 모든 의혹을 다 풀 수 있는 진상규명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탄핵 가결 소식을 접한 시민단체 ‘세월호 3년 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 박미자(46·여)씨는 “유가족과 다같이 눈물을 흘리고 환호했다. 탄핵안 가결로 세월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3년간 흘린 눈물을 일부나마 보상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퇴진행동 측은 “대한민국 국민이 자랑스럽다. 탄핵소추안 가결은 광장의 위대한 촛불이 이룬 성과다”고 평가했다. 남정수 퇴진행동 대변인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즉각 퇴진을 요청했기 때문에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야당도 이 성과를 자신들의 성과로 생각하면 안 되고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50여 명의 의원들이 탄핵에 반대했다니 개탄스럽지만 압도적으로 탄핵안 가결은 됐으니 국민의 승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한편으로는 탄핵 반대 의원들의 전화번호를 온라인에 공개한다든지,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전략을 써 왔다.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국민의 승리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필귀정이다. 앞으로의 개헌 논의와 대선 출마 등도 국민들이 잘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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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퇴진행동과 시민들은 오후 7시부터 광화문 광장에 다시 모여 촛불집회를 한 시간가량 가진 뒤 청와대와 200m 떨어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10일로 예정된 7차 촛불집회는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퇴진행동은 10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면 1차 행진을 벌이고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연 뒤, 오후 6시에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와 집회를 열 계획이다. 퇴진행동은 이날 집회에서도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교통 문제를 이유로 내자동로터리 앞까지만 행진을 허용하고 율곡로 이북 집회·행진에 대해서는 모두 금지를 통고했다.

국회 앞 1만 시민 “촛불의 성과”
“국민이 깨어 있어 나라 앞날 밝아”
“앞으로 개헌·대선 잘 판단해야”

글=채승기·조진형 기자 ch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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