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여성·청소년에게 술 권하는 비정상 사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방형애 고려대 연구교수 대한보건협회 기획실장

방형애
고려대 연구교수
대한보건협회 기획실장

국민 모두가 우울한 요즈음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은 뭘까. 즉각 ‘술’이라고 답하신 분들을 위해 퀴즈 하나 드린다. 김태희·이효리·싸이·아이유, 그리고 수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이자 국내 대표 소주광고 모델들이다. 빅뱅·김연아·전지현·송중기도 전성기에 맥주광고 모델을 했다. 아마 다음엔 박보검이 틀림없을 듯하다.

이런 일은 선진국에선 생각하기도 어렵다. 축구선수 메시나 호나우두는 술 광고에 나서지 못한다. 영국은 ‘어떠한 술의 광고에도 젊은이의 인기를 끄는 유명한 인물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적시한 방송협회 윤리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아예 주류광고 자체를 금지한다. 미국도 연방 알코올음료관리법을 토대로 메이저리그 선수 등 스포츠 선수의 주류광고 출연을 금지하고 있다. 전 세계 주류기업들도 윤리경영 차원에서 음주 취약 계층인 청소년이나 여성을 상대로 한 공격적 마케팅은 하지 않는다.

한국만의 역주행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만 15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올 상반기 주류 소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과일소주처럼 향이나 당·색소를 가미한 리큐르의 1회 평균 음주량이 2013년 2.2잔에서 2016년 6잔으로 급증했다. 소주가 같은 기간 동안 6.4잔에서 6.1잔으로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알코올 농도 13~15도의 저도수 과일소주가 출시되면서 광고와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술을 잘 못 마시는 새내기 대학생과 여성들도 한 잔쯤 마시게 하는 유인효과가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7월 20대 이상 성인 남녀 2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10명 중 4명꼴로 저도수 소주 때문에 음주량이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특히 남성(34%)보다 여성(42%)의 음주량 증가 효과가 컸다.

그러면 저도수 소주는 마셔도 괜찮을까? 19도나 20도 소주 1잔의 알코올 함량은 약 8g이다. 14도짜리 과일소주는 약 5.6g이다. 대한가정의학회가 정한 남성의 저위험 음주량이 20도 소주 2잔이므로 과일소주 3잔이면 이 기준을 훌쩍 넘는다. 여성은 기준이 1잔이니 과일소주도 1.5잔 정도다.

참고로 유럽연합(EU)에서는 2014년 암 예방 수칙을 개정해 암 예방을 위해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한두 잔도 마시지 말라고 바꿨다.

최근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에서 한국인이 술로 섭취하는 에너지가 세계 1위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2012년 전 세계 180개 증류주 브랜드에서 판매량 1, 3위를 차지한 술이 ‘참이슬’과 ‘처음처럼’이라고 발표한 곳이다. 거의 한국에서만 팔리는 소주가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모든 증류주를 제치고 10년 이상 1위를 차지할 만큼 우리나라는 소주 소비대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증류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다. 이 많은 술을 대체 누가 다 마시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더. 청소년에게 술을 주는 사람 1위는? 놀랍게도 ‘부모’다. 더 놀라운 것은 최근 한 달 이내 술을 마신 적이 있다는 청소년(16.7%)의 절반은 한 번에 소주 5잔 이상을 마시는 ‘위험음주자’다. 술은 어른에게 배우는 것이라며 음복을 권하는 문화가 음주 시작의 동기다.

24시간 술을 살 수 있고, 공원·학교·극장·병원·해수욕장·등산로에서 음주가 허용되며, 심지어 키즈 카페에서도 술을 파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것도 부족한지 올 7월 국세청은 국민 불편을 덜어 주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규제를 개선한다며 야구장 맥주보이 허용, 와인택배 허용, 치킨집 술 배달 허용, 수퍼마켓 주류 배달 허용을 단번에 발표했다.

이런 추세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맥도날드·롯데리아·KFC에서도 맥주를 팔겠다고 선언하고 판촉행사까지 하고 있다. 동네 책방의 변신이라며 ‘술 먹는 책방’을 언론이 띄워 주기까지 한다. 이제는 아이들이 햄버거 집에서도, 책방에서도 술 마시는 어른들을 무한히 만나게 된 것이다. 부모가 술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보거나 주류광고를 많이 접한 청소년들일수록 더 일찍 술을 마시고 훨씬 음주 문제가 심각하다는 연구 보고는 수없이 많다.

‘소주병을 들고 활짝 웃는 젊고 발랄한 여성스타들’ ‘도수를 낮춘 부드러운 술’ ‘유산균과 비타민이 들어 있는 막걸리’ 등의 광고는 지금 누구 보고 술을 더 많이 마시라고 유혹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드라마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안방 TV에서 ‘아이들 앞에서 술 마시는 부모들’, 테이블에 가득한 술병과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주인공들, 토크쇼에서 수시로 주량을 자랑하는 연예인들 모습은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 광고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술’을 통해 멋지고 당당한(?) 내가 될 수 있다고 우리 사회가 ‘우리의 아이들’ ‘우리 엄마들’, 그리고 ‘내 애인’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방 형 애
고려대 연구교수
대한보건협회 기획실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