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야당은 여당이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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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즈음 개헌정국이 호헌정국으로 반전되면서 정치마당은 차갑게 냉각되었다. 그 동토위에 여당의 비위에 거슬리는 야당이 출범했다. 처음부터 곤욕을 치르는 모습이 역연하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정치에 었어서 야당의 의미와 그 존재 양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돌이켜볼 때, 근대민주주의는 모든 성인 남녀가 선거때 한표씩 던질수 있는 보통선거권과 더불어 누구나 야담을 조직하고 소수자의 이의를 자유롭게 표명할수 있는 「야당권」이 제도화되면서 그내실이 갖춰졌다. 따라서 야당의 존재를 논리적 전제로 하지 않는 여당은 절대권력과 동의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여당이 민주정부의 주역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건강하고 경쟁적인 야당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영국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양당제의 경우 야당은 비록 총선에서 패배했을지라도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정권을 승계하게될것이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쉽게 예견된다. 따라서 야당은 「잠재적 여당」이며 내일의 주역이다. 그러므로 책임있고 성숙한 정치적 행동을 지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권력의 나눔이 일상화되지 못한 정치체제, 다시 말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망이 어두운 권위주의체제의 경우 야당은 이른바 「영원 야당」의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수 없다.이때 야당은 만성화된 좌절감의 역반응으로 다음 두가지 가능성중 한가지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하나는 위성정당화의 가능성이다. 이 경우 야당은 체념속에 정권교체의 꿈을 묻어버리고 명목상 간판만 지킨채 실제로 여당의 비호아래 이권배분에나 관여하는 타락한 몰골이 된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반체제정당화의 가능성이다. 이 경우 정권교체의 전망이 전혀 없는 현실에 집착하기보다 현상 타파에 온힘을 기울여 극단적인 공격성향을 표출하게 된다. 이때 단호한 여당의 반격때문에 결국 정국은 한껏 경직화되고 이른바 「체제」문제와 연관하여 여야간의 첨예한 대결상황을 빚게된다.
어느 경우나 우리에게 전혀 낯선 현상들이 아니다. 이런 경우들은 권력의 나눔이 일상화되어있는 체제의 안목에서 볼때 결코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야당의 구체적 모습이 크게는 그 정치체제의 속성과 작게는 여당의 대야당 전략과 밀접히 연관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민주정치의 교본으로 불리는 영국의 경우 온건좌익인 노동당과 온건우익인 보수당간의 정치적 이원성은 양당 지지세력간의 사회계층적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이원성과 연관되지만 그것이 정치사회의 감정적 이원성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이 점이 영국정치의 강점이다.
양당이 이념정당으로서의 특징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양자가 비교적 온건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이 나라 정치과정에 활력을 주입하지 결코 양당간의 이념적 단절현상을 초래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야는 생소한 정치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상호간의 감정이입이 쉽게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의 경우를 되돌아 보자. 여당인 민정당은 새로 출범한 민주당을 애써 외면하러 들지만 조만간 어쩔수 없이 「강성」신당을 제1야당으로 마주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정당과 민주당은 똑같은 보수정당으로 서로간의 이념적 거리도 두드러지지 않고 지지세력기반의 현격한 계층적 차이도 없다.
다시 말해 영국정치가 보여주는 정치적·사회적 이원성마저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의 감정적 이원성은 심연보다 깊고 건너기 어렵다. 새로 열린 국회에서 여야가 내뱉은 극언들은 양당간의 감정적 단층을 여실히 증명한다.
개헌논의의 잠정적 유보라고는하나 호헌정국으로의 급선회로 야당은 그나마 꿈결처럼 희미하던가까운 내일의 평화적 정권교체 꿈은 더욱 벌어졌다. 「체육관식 선거」의 결과는 이미 나와있는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권력 자원은 가지지 못했으되 명분의 우위를 스스로 믿고 있는 민주당이 여기서 고삐를 늦출리가없다. 그러자니 여당의 눈에 그모습이 「야생마」로 보였는지 모른다.
여기서 함께 인식하지 않을수없는 것은 국민의 마음은 아직도 개헌정국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눈에는 힘의 시위를 계속하는 여나 명분 독점만을 고집하는 야의 모습도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모여 옛 그리스의 정치학 고전에서처럼 「대화」의 형식을 취할때 민주정치에 있어서 여야의 역할이 바르게 인식될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여당이 명심해야할 것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야당은 이미 건강한 야당이 아니라는 사실이며, 야당이 성숙한 공당으로 발전하는데는 여당의 권력나눔의 의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야당의 조련사는바로 여당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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