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파동의 교훈|민간주도 경제의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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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외건설과 해운업을 중심으로 한 18개의 대형 부실기업들이 다시 정리됨으로써 다섯 차례에 걸친 부실기업 정리작업이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이 엄청난 부실파동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희생과 부담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경제에 더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고, 국민과 납세자에게 온갖 부담과 피해를 끼치고, 어려운 안팎의 환경에서 각고하며 기업을 이끌어 온 많은 선량한 기업가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조화와 형평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부실기업의 문제는 정책과 행정, 금융과 기업관행, 기업풍토와 기업가 정신들이 일대쇄신을 이루는 계기가 되지 않는 한 우리 경제에 아무런 교훈을 남기지 못할 것이고 무의미한 희생과 부담으로 남을 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장장 3년여에 걸친 부실정리 파동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진정하고 의미 있는 마무리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더 많은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엄정하게 지적하는 바이다.
정부와 관료, 은행과 기업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왜 이 같은 엄청난 부실이 생겨났으며, 부실화 과정에서 대응하는 수단과 노력은 최선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처리하는 방식은 얼마나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는지를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재논의 여지없이 해외건설과 해운업의 대형부실은 정부의 정책부재가 선도하고, 금융의 책임부재가 이를 조장시켰으며, 기업가의 경영부재와 반사회성이 그것을 확산시켰음을 직시해야한다.
동찰력없는 정책방향과 한건주의식 관료주의, 관 일변도의 경제운영풍토가 터무니없는 정책방향과 과잉·중복투자를 유발하고, 그것을 제동하고 선별해야 할 금융은 무사안일과 책임회피에만 급급함으로써 급기야는 엄청난 부실을 떠않게 되었으며, 정부와 은행의 온갖 특혜와 지원을 기업의 성공으로 보답하기보다는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이용해 방만한 경영과 개인적 성공에 몰두해온 부실기업인들은 결과적으로 사회와 경제에 크나큰 부담과 희생을 떠넘기게 되었다.
이 같은 방대한 부담과 재원낭비가 그나마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부실 재발의 원천적 요인들이 이번 기회에 철저히 봉쇄돼야 한다. 관과 정책은 더 이상 불필요한 민간영역 간여와 지배를 멈추어야 하며, 명실상부한 민간주도 경제를 조속히 정착시켜야 한다.
금융은 뿌리깊은 관치금융과 무책임에서 벗어나야 하며 자율과 책임이 부동의 금융원리가 되도록 다함께 거들어야할 것이다. 기업과 기업가는 정경유착과 특혜의존의 전시대적 집착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똑바로 보고, 기업의 경영이 이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새삼 깨달아야할 것이다.
교훈과 쇄신을 함께 얻고 엄중한 책임규명이 뒤따르지 않는 한 대형부실은 결코 이번 정리로도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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